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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나의 스승 삼는다는 뜻이다. 마오쩌둥이 1960년대 문화혁명 때 반혁명분자들을 오히려 혁명의 교사로 삼자며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을 마오가 처음 사용했는지 모르나 같은 뜻의 말은 이미 2500년 전 공자도 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중 착한 사람을 택해 따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고선 나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고 가르친 것이다(주자의 논어집주 참조).
요즘 한국 사람들이 정치에서 이 가르침을 많이 따르는 것 같아 떠올려본 단상이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국정운영 행태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다음 국가 지도자 선택 과정에서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특히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그렇다.
우선, 다음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가 뭐냐는 물음에 국민 통합 또는 경제라는 답변이 1위 2위 다툼을 하고 있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현 정권에서 나타났던 정치적 이념과 시장경제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과 국론 분열에 대한 많은 사람의 염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 정권을 반면교사 삼아 편을 가르는 말싸움꾼보다는 국민의 힘을 모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일꾼을 뽑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다음, 후보들의 의혹 공방이 지지 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물음에 "별로"라는 답변이 더 많은 점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대선에서 현 정권 탄생에 적잖이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김대업의 이회창 후보 아들들 병역비리 의혹 폭로 식 네거티브 캠페인이 이번 대선에선 반면교사 역할을 한 때문이다.
이 같은 반면교사 현상으로 보다 많은 혜택을 보는 한나라당 예비 후보는 누구일까. 이명박 후보가 아닐까 싶다.
경제라고 하면 아무래도 드라마 등을 통해 '현대 신화'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 클로즈업된 이 후보가 박근혜 후보보다 먼저 떠오르는 게 현실이다. '조국 근대화=박정희' 이미지로 경제와 관련하여 박 후보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한 쪽은 본인이고 다른 쪽은 부녀간이라는 점 때문에 한 치 건너 두 치라는 말마따나 이·박 후보 간에 강도의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검증 공방과 관련해서도 지난번에 김대업의 네거티브에 당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제기된 의혹의 진위를 떠나 의혹 제기 자체에 부정적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김대업 학습효과랄까 백신효과로 박 후보 진영으로서는 안타깝게도 이 후보에 대한 여러 의혹 제기가 기대만큼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국민 통합 이슈와 관련해서도 이 후보 쪽이 손해를 보는 것 같진 않다. 기자의 주관적 분석이지만 호남에 박정희 대통령 때의 지역감정이 잠재해 있어 여론조사 같은 때에 은연중 표출되지 않나 싶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한나라당 예선전, 그것도 결전을 1주일 남겨둔 지금까지 나타난 것들일 뿐이다. 앞으로 1주일 사이에 무슨 돌발사태가 일어날지, 또 본선에서는 어떤 이변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한나라당의 대선 예선전이 이러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메이저 보수 신문들에게서 영향 받은 바 크다 할 것이다. 물론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면서 반면교사 삼자고 공공연히, 또는 암묵적으로 가르쳐온 결과인 것이다. 메이저 신문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사족이지만 가장 보수적이랄 수 있는 후보가 보수 언론의 덕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기자의 주관적 분석에 일리가 있다면 이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