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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이선민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10년 한국의 정체와 후퇴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요즘 진행되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실망을 넘어 낙담을 느끼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 후보가 선진국을 만들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한반도 대운하’ ‘열차 페리’ 등 양쪽의 대표 공약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것 같더니 언제부턴가 정책 논쟁은 사라지고 거친 상호 비방과 날선 감정 대립만 난무한다. 심지어 잇단 고소와 고발로 스스로 검찰을 당내 경선에 끌어들이고 있다.
한여름 무더위를 더 짜증나게 만드는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끝없는 갈등을 지켜보면서 드는 의문은 과연 한국 우파는 이런 소모전을 중지시킬 역량이 없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치권의 우파를 대표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외부에도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많은 우파 인사들이 있다. 학계, 종교계, 법조계, 경제계 등을 이끌고 있는 지도급 인물들은 대부분 이념적으로 우파다. 더구나 최근 몇 년간 활성화된 뉴라이트·선진화운동을 통해 우파의 역량은 정책과 인물 양면에서 크게 강화됐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한나라당뿐 아니라 이들 우파 전체가 힘과 지혜를 모아서 좌파로부터 정권을 되찾아 나라를 다시 발전 궤도에 올려놓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파가 면모를 일신하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주된 책임은 한나라당과 두 유력 후보에게 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은 당내 경선 승리가 곧 대선 승리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정책 경쟁을 당부하는 한나라당 밖 우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뉴라이트·선진화 운동의 리더들이 지난 9일 두 후보 진영의 자제와 국정 비전 제시를 통한 정책 경쟁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두 후보 쪽은 들은 척도 안 했다.
한나라당 경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제 외부의 우파 세력이 신경 써야 할 것은 경선 결과가 아니라 그 이후 상황이다. 지금처럼 가면 누가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되든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후보가 된 사람은 경선 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어 기진맥진하고, 되지 못한 사람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지와 협조를 후보에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 한나라당이 발표한 ‘신(新)대북정책’이 우파 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서도 보듯 한나라당은 아직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의 비전과 정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하는 대통령 후보가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또 요행 당선된다 해도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래서 요즘 한나라당과 그 후보들로부터 마음이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밖의 우파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이런 상황을 추스르는 일이다. 경선이 끝난 후 승자와 패자의 단합을 촉구하고, 한나라당이 경선 후유증을 빨리 털어버리며 후보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미지와 정책을 보일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지난 24일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우파 진영의 시민단체들은 ‘나라선진화·공작정치 분쇄 국민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한나라당과의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며, 정책을 개발하고 공약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한나라당 후보가 우파의 명실상부한 대표가 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이는 상당 부분 한나라당 밖 우파들의 이런 활약 성과가 좌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