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은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면 이미 성인이 된 어른들은 어떨까? 아마도 지난날의 추억을 되씹으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때론 아파하기도 한다. 이미 현실이 된 어린 시절 꿈속에서 그 때의 추억을 먹으며 오늘 하루도 잠을 재촉해가고 있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사라져가는 한 노래가 언뜻 어린 시절 향수를 강하게 자극해왔다. 이제는 신기루처럼 절대 다가갈 수 없는 아주 먼 곳의 그것들을...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일제하 수난시대의 서러움을 음으로 담아 노래했다는 ‘바위고개’. 그 이면에 숨어 있던 뜻을 전혀 몰랐던 어린 시절에 즐겨 부르곤 했던 노래이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의 배려로 여러 대회를 따라다니느라 배워 익힌 것이었다. 단순한 곡조에 어떻게 보면 평범한 노래말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에 그냥 부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곡에 숨어 있는 혼을 따라 빠져 들어가기만 했었다. 왠지 슬퍼지기도 하고, 뭔가 모를 것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게 새어나오기도 했다. 노래에 스며들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애 닳는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내곤 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새롭게 전학을 와 친구들을 사귈 틈 없이 학교가 파하면 마루로 된 복도를 걸음을 세며 지나가곤 했었다. 당시의 교사들은 수시로 시·도를 바꿔 전근을 다녀야 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언제나 두 집 살림을 면하기 어려웠었다. 아버지가 외지로 근무처를 옮기시면 교육상 형이나 누나들은 도시 근처에 그대로 머물렀고, 막내인 어린 나는 항상 부모님을 따라 가야만 했다. 그래서 나에겐 기억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들이 별반 없는 것이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전학을 가면 한두 달은 골목길에 홀로 앉아 구슬치기며 땅따먹기를 하면서 새로 이사 온 동네 아이들의 인상을 탐색하곤 했었다.

    그날은 저물어가는 해로 생긴 그림자가 복도에 길게 늘어져 있었던 기억으로 보아 청소를 하다 늦어졌던 때였을 것이다. 삐걱거리는 복도를 걸어 한 교실을 지나치고 있었다. 피아노 소리와 함께 합창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려왔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훔쳐보는 심정으로 교실 창문 한 쪽에 눈을 갖다 대었었다. 음악선생님의 지도하에 합창부가 방과 후 연습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반주를 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파열음을 내며 피아노 건반을 힘차게 내려쳤다. 깜짝 놀라 창문에서 몸을 떨어뜨려 숨었던 기억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선생님의 새롭게 지도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듯하더니 잠시 후 피아노 소리와 어울려 다시 조화로운 화음이 복도 전체를 가득 메워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 날은 그렇게 복도를 걸어 나갔을 것이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그 교실을 지나쳐갔다. 왜 그랬을까? 나도 저렇게 노래하고 싶다는 어릴 적 순진한 마음이 저절로 마음속에서 생겨나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줍음 타며 숫기 없던 내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아도 웃음이 나오는 일이었다. 며칠을 별러오던 한 날, 그날도 합창부가 한창 연습중인 그 교실 문을 나는 두드리고 있었다. 노래하던 학생들과 선생님의 시선이 동시에 문밖의 나에게로 향했다. 반주를 마친 선생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야? 들어 와.”
    “..........”

    미닫이문을 열 때 생겨나던 바닥의 둔탁한 마찰 소리가 어색한 침묵을 깨뜨리고 있었다. 이미 각오했던 터였지만, 나에게 집중되어 쏟아지는 시선이 무겁게만 느껴졌었다.

    “왜? 무슨 일이야?”
    “노래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몇 학년인데?”
    “3학년입니다.”
    “그래? 그럼 안 되겠는데... 합창부는 4학년부터 될 수 있거든?”
    “................”

    대꾸를 못하고 머뭇거리며 가만히 서 있는 내 표정이 난처하게 보였나 보다. 그냥 내쫓기 뭐하니 노래나 한 번 시켜 그것을 이유로 하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한 침묵이 잠시 흐른 다음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그럼 노래 한 번 해볼래?”
    “네.”
    “어떤 노래?”
    “.........”

    특별하게 생각나는 노래가 없던 나는 또다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노래를 즐겨 부르던 경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순간의 감정에서 생겨난 욕구가 내 발걸음을 그곳으로 이끌었을 뿐이었다.

    “이 노래 부를 수 있겠니?”
    “네!”

    선생님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물었었다.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그 노래를 불렀었다. 교실은 이미 예상 못한 침입자로 인해 잡음 하나 없이 조용했던 터였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 속에서 잠자고 있던 나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

    그 노래는 ‘나뭇잎 배’였다. 그 때 내 마음은 노래말 속의 푸른 달과 흰 구름처럼 교실 안을 두웅실 떠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노래를 다 마친 다음의 분위기에서 나는 목적한 바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게 한 쪽 자리를 가리키며 가서 앉으라고 했다. 상급생들과의 자리라 위축될 만도 했지만, 그 후 나는 줄곧 노래하는 재미에 푹 빠져 전혀 어색함 없이 지내가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내게 따로 노래연습을 시켜 이 대회 저 대회를 참여시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나는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진학한 중학교에는 내 꿈을 키워갈 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당시의 가정 형편도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생동하던 꿈이 그 생명을 잃고 다시 잠들어가고 있을 중3때였다. 당시 학교 음악실은 본 건물과 분리되어 학교 모퉁이 매점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허기를 메우기 위해 친구들과 어울려 매점으로 갈 때, 나는 또 내 마음 속의 꿈을 깨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고등학교 한 선배가 스스로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그 후 한동안 마음의 갈등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내가 어릴 적 꾸던 꿈은 조용하고 아름답게 하나의 추억이 되어 내 마음 속에 잠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꿈이 꿈틀댈 때마다 ‘오빠생각’도 부르고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도 불렀었다. 이 노래들에는 어릴 적 내 소중한 꿈과 함께 항상 그것을 기억하며 추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깊게 배어있다.

    ‘뜸뿍뜸뿍 뜸뿍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

    순수한 동심을 통해 어렵던 시절 모두가 느낄 수 있었던 쓸쓸한 정을 노래한 ‘오빠생각’이다. 우리의 마음을 조용한 슬픔과 그리움 속으로 빠져들게 하던 또 하나의 노래는 김소월의 시를 노래말로 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였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면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듯한 감정을 누구나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정이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쁘게, 슬프게, 때로는 슬픔을 통한 마음의 만족을 느낄 수 있게까지 만들어주는 이런 노래들을 지금은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정을 느끼는 감정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일생을 통해 사람들이 맺게 되는 인연 가운데 부모와 자식 간의 것처럼 소중한 인연은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이것은 선택 할 수도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선택하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일생에 있어 단 한 번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미물로 생각하는 가시고기, 문어와 같은 생명체들의 생태에서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많은 교훈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물며 인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부모의 보호 아래 보내는 동물도 없을진대, 그 인연의 소중함을 말로 더 이상 표현할 이유가 남아있으랴.

    지금 이 순간 부모가 자식에게 바친 정이 바로 새벽이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밤새 새곡새곡 쌓여져 방울로 맺혀지면 그것을 생명수로 하여 우리 모두는 생존의 험난한 시간들을 안전하게 지나왔을 것이다. 그랬던 것이 먼동이 트고 해가 대지를 비추어 우리가 세상에 그 존재를 당당하게 나타낼 때, 자식을 향한 정을 모두 쏟아낸 부모들은 이슬이 증발해 버리듯 이미 그 생명력을 서서히 상실해 가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