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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7일자 오니피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논설위원이 쓴 '노 대통령 마음 속 그 면도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3년 한국정치학회 연말 학술대회에서 ‘노 대통령의 성격 유형과 리더십 스타일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논문은 “대통령의 개인적, 심리적 요인들이 국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대통령의 ‘개인적, 심리적’ 요인이 나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대통령의 성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다. 세계사는 온통 그걸 증명하는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
정치학회 논문은 노 대통령의 성격이 외향적 사고(思考)형과 외향적 감각형이 결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향적 사고형은 개혁적 성향이지만, 거슬리는 일을 참지 못한다고 했다. 외향적 감각형은 적응력이 뛰어난 반면, 충동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4년여 동안 이런 성향들을 모두 드러내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불행하게도 부정적 성향이 더 두드러졌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 대통령에게도 마음의 갈림길이 있다. 그 갈림길에서 부정적 방향으로 노 대통령을 이끌고 간 것은 ‘열등감’이었다고 믿는다. 노 대통령은 이 열등감 때문에 스스로도 괴로워했다. 그는 자신이 쓴 책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이렇게 썼다.
“어릴 때 나는 상당히 반항적이었고 한편으로는 열등감이 심했던 것 같다. 가슴에 한과 적개심을 감추고 있기도 했고, 쉽게 좌절하기도 했다. 나의 반항과 열등감은 일상적으로 겪었던 환경의 영향과 한 맺힌 어머니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성장기 내내 지배했던 고통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노 대통령은 열등감을 증오로 표출하곤 했다. 그는 책에서 “국민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의 대부분은 가난과 열등감, 그로 인한 반항적 태도였다. 그러나 자존심과 우월감도 그에 못지않게 강했다. 우월감과 반항심이 뒤섞여 가끔 엉뚱한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썼다. 그런 사건 중의 하나가 면도칼 사건이다. 노 대통령은 “체육 시간에 당번이 돼 교실을 지키다 부잣집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고무 가방을 발견했다. 그만 면도칼로 가방을 죽 찢어 버렸다”고 했다. 노 대통령의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생활기록부 평가란에 ‘두뇌 명철, 사리 판단력 풍부. 그러나 비타협적이며 극히 독선적. 불안한 거동이 많으며 악화 우려. 지나치게 자만심이 강하여 비협조적임’이라고 적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성격은 국회의원이 된 다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첫 대정부 질문 ‘성공’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그때 국회에서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겠다.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이야!”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그 대정부 질문 다음 날 수없이 걸려오는 격려 전화를 받았을 때 흥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썼다. 이 일은 노 대통령 마음속에서 마구 면도칼을 휘두르려는 충동을 막을 수 있는 브레이크를 없애 버린 것 같다.
노 대통령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노 대통령이 다른 책에서 썼듯이 어떤 사람은 역경 속에서 따뜻하고 건전한 상식을 연마한다. 링컨이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역경 속에서 증오와 원한을 키운다. 닉슨이 그런 사람이다. 링컨은 닉슨보다 몇 배 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분열된 나라를 품어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됐다. 닉슨은 가난했지만 사립명문대 로스쿨까지 나왔다. 그러고도 평생을 ‘누가 나를 얕본다’는 피해의식과 원한을 갖고 살다가 미국 최악의 대통령이 됐다.
우리 국민은 ‘가난 속에서 난 용’을 동정하고 좋아한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나도 가난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도 ‘서민 대통령’을 내세워 당선됐다. 개천에서는 용이 나온다. 그러나 그중엔 증오의 불을 감춘 용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