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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신효섭 논설위원이 쓴 '대통령 위헌 놔둔 국무위원들도 공범'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무회의는 중요한 정부 정책을 심의하는 헌법 기구다. 대통령이 의장, 국무총리가 부의장이고 나머지 국무위원이 19명이다. 국무위원들 중에서 각 부(部) 장관들이 임명된다(헌법 94조). ‘국무위원(인 장관들)은 국무회의 구성원으로서는 대통령, 국무총리와 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이 점이 각 부 장(관)으로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지휘·감독을 받는 경우와 구별된다.’(권영성 ‘헌법학원론’) 헌법은 행정부처 장(長)보다는 국무위원으로서 장관들의 역할을 더 무겁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장관들이 부처 일로는 대통령 지휘를 받아도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 의자에 앉았을 때는 대통령과 같은 위치에서 할 말을 해야 한다는 게 헌법의 요구다.
이 원칙에 비춰본 이 정부 국무회의, 국무위원들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국무회의는 시도 때도 없이 위헌·위법적 발언들을 쏟아내는 대통령의 ‘원맨쇼장’이 돼버린 지 오래다. 대통령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취재 제한 조치’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곳이 1월 16일 국무회의였다. “세계 각국 기자실에서 기자 몇몇이 죽치고 앉아 담합하는 사례가 있는지 조사하라”는 지시였다. 대통령은 3월 20일 국무회의에선 “보따리장수 같이 정치해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씨를 공격했다. ‘대선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폄하한’ 것이다. 선관위는 지난 7일 이런 식의 대통령 발언을 선거법 위반으로 판정했다.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위원들을 앉혀놓고선 “(지난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특강은 선거활동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 입을 막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세계에 없는 일이다”고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그 특강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19일 국무회의에선 “정부 연구기관들이 대선 후보들의 주요 공약 타당성을 조사해 국회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응하라. 대통령 명령이니 하라. 위법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무원들의 선거 개입을 부추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대통령이 지난 6개월 동안 다른 자리도 아닌 국무회의에서 위헌·위법적인 행태를 반복했는데도 국무위원 중 누구도 이를 막거나 반대하고 나서지 않았다. 국무위원들은 대부분 정부·정치권에서 수십년씩 경력을 쌓았다.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 발언의 위험성을 몰랐을 리가 없다. 한 국무위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대통령이 ‘위헌’이라고 한 선거법을 “위헌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해 ‘소신 있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소신 있는’ 국무위원이라면 대통령이 자기 앞에서 선거법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댈 때 가로막고 나섰어야 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 “(정부 연구기관의 야당 후보 공약 연구보고서가 유출돼 결과적으로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했던 국무위원도 마찬가지다. 국무회의에서는 대통령의 ‘야당 공약 연구’ 지시를 받아 적고만 있다가 이제 와서 ‘선거법 위반’을 인정하는 건 선거법과 국민을 두 번 우롱하는 짓이다.
결국 대통령이 건국 이후 처음으로 헌재에서 ‘헌법을 어겼다’는 판정을 받고 재임 도중 ‘선거법 위반 전과 3범’의 신세까지 된 데에는 국무위원들의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 국무위원들은 대통령의 위헌·위법을 ‘방조(幇助)’한 공범이나 한가지다. 역사는 이런 이 정부 국무위원들의 비겁함과 무소신(無所信)을 똑똑히 기록해뒀다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