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박두식 정치부 차장대우가 쓴 '이해찬 프로젝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유별난 정치인이다. 자신만의 정치스타일에 대한 집착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둔 요즘만 해도 그렇다. 그가 나타나는 곳에는 기자들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는 따뜻한 말 한번 건네는 법이 없다. 오히려 달라붙는 취재진을 향해 “이건 예의가 아니지요”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다. 대개 정치인들은 카메라와 마이크만 보면 무조건 돌진하곤 한다. 그러나 그는 거꾸로 피해 다니는 편이다.

    그는 올해 55세다. 1952년 용띠다. 정치권 입문이 빠른 경우에나 중진 얘기를 들을 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그는 벌써 원로 대접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 내리 국회의원 5선을 기록했고, 장관과 국무총리까지 지낸 경력 때문이다. 이 전 총리는 깐깐한 성격과 독설로 유명하다. 같은 당 동료들조차 충돌을 피할 정도다. 총리 재임 시절 한나라당이 그를 건드렸다가 몇 번 낭패를 겪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대중정치인이 아니라 정책을 다루는 행정가”라고 부른 적이 있다. 하지만 그의 전공은 선거 기획이다. 그의 이력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 선거 기획단장’ ‘○○ 선거 본부장’ 같은 직책이다. 자신의 선거가 아니라 남의 선거를 돕고 기획하는 일의 전문가였다.

    그런 이 전 총리가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자신의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대선 출마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쳤다. 출마 권유를 받으면 오히려 “대선에 뜻이 있었다면 총리 때 그렇게 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국회 파행까지 낳곤 했던 한나라당과의 충돌을 염두에 둔 얘기다. 또 “나는 관저(官邸) 체질이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총리를 하면서 1년 9개월 동안 관저에 살아본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는 총리 시절 “대통령이란 자리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되는 자리가 아니다”, “대선에 도전할 생각이 없다”고 단언했었다. 다른 정치인이 이렇게 얘기했다면 괜히 그러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인 이해찬’을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을 무게감 있게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이 전 총리의 출마는 적잖은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선거의 생리를 잘 아는 그가, 자신의 승산이 높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이미 범여권에선 그의 출마를 놓고 갖가지 해석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이해찬 프로젝트’란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전 총리가 자신의 당선보다는 친노(親盧) 세력의 정치적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나섰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노 대통령의 지원 속에 이뤄진 ‘이해찬 기획, 이해찬 주연’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친노 세력에게 이 전 총리는 ‘구명보트’나 다름없다. 친노 세력은 요즘 ‘굴복’과 ‘옥쇄’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있지만, 그것은 청와대 안에 갇힌 생각일 뿐이다. 범여권에서는 어떻게든 친노를 지우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전 총리가 출마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친노 386 의원들의 역할이 컸다. 그들은 이 전 총리를 “비겁하다”고까지 몰아세웠다고 한다.

    너도나도 ‘친노 이미지 지우기’가 한창인 요즘 여권에서, ‘노무현 정권의 계승’을 내건 것 자체가 이 전 총리를 유별난 존재로 느껴지게 만든다. 누군가는 책임있게 지난 5년의 공과(功過)에 대해 평가받겠다고 나서는 것이 정치의 도리이기는 하다. 난파선을 이끌겠다고 나선 것으로만 믿기에는, ‘선거 기획의 달인’이라는 그의 경력이 목에 가시처럼 걸리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