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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5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4년4개월간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이제 임기를 8개월 남겨 놓았다. 정상적이라면 원숙한 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시기다. 그러나 국민은 그 대통령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될 얘기들을 그제 또 들어야 했다.
노 대통령은 13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세력” “군사독재 잔재세력” “평화개혁 세력” “집권 세력” 등을 계속 언급했다. 지금 대통령 눈에는 이 국민은 이 세력이고 저 국민은 저 세력으로 보일 뿐이다. 대통령 입에선 “전술”과 “전략”이란 말도 끊임없이 나온다. 여권 통합 관련 질문 하나에만 ‘전략’이란 말을 6번 사용했다. 대통령이 말하는 전술과 전략은 국가 차원의 외교전략, 국방전략, 경제건설전략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 4년4개월이나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자기 편이 아닌 국민들을 상대로 ‘전술’과 ‘전략’을 구사한다.
자리가 사람을 바꾸는 법이다. 당파를 갈랐던 사람도 대통령직에 오른 후 한 파당의 보스에서 국민 전체의 지도자로 변모해 갔다. 이것이 대통령직이 갖는, 사람의 인격을 성숙시키는 힘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임기 말에 이르기까지 파당의 보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통합의 기술”을 말했고 “정직, 성실, 신의, 따뜻한 가슴”을 들었다. 지금 노 대통령이 일개 파당의 지도자에 머물러 있는 이유, 그래서 국민이 노 대통령을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노사모’나 ‘참여정부 평가포럼’ 같은 소수 중의 소수의 파당 대표로 보는 이유는 바로 이런 대통령의 덕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국민을 이 세력 저 세력으로 편가르는 사람이 통합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시 입에 올리기도 싫은 일이지만 대통령이 TV에 나와 망신을 주어 그 바람에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던 사람이 있었다. 청와대의 어느 누구도 그 가족에게 한마디 위로의 말을 전한 일이 없다. 이게 따뜻한 가슴인가. 김근태 의원은 그래도 대통령과 함께 집권당을 만들었던 핵심 중의 한 사람이다. 밉고 곱고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 그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어떻게 그에게 “어리석은 짓이고 자충수다. 뚝심이 없어 그렇다”고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것은 신의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은 또다시 선거법에 대해 “정치와 선거에 대해 적대적이고 불공정한 법”이라며 “대통령 중립 의무와 선거운동 금지는 위헌 요소가 있다”고 했다. 이 문제를 끝내 헌법재판소로 가져가겠다고도 했다. 이제 국민은 대통령이 법률 공부를 많이 한 줄은 알고 있다. 그와 함께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는 정신이 없는 것도 충분히 알게 됐다.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제 아무리 헌법과 법률을 속속들이 꿰고 있어도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대통령은 작년 한나라당과의 연정 제안은 “실패한 전략이었다”며 “사람들이 연정과 합당을 구분하지 못하더라. 공부 좀 더 해야 한다”고 했다. 연정은 연정의 토대가 있어야 되는 법이다.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한동안 나라를 들쑤셔 놓고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공부를 하라는 것이 대통령의 노릇은 아니다.
대통령은 지난 2일 참평포럼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끔찍하다”고 했었다. 그것 때문에 선거법 위반 결정도 받았다. 그래 놓고 어제는 “그것은 상징적인 언어”라고 했다. 엊그제 한 원로 시인은 “노 대통령의 언어는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말에 관한 덕목을 거론할 수조차 없다.
노 대통령은 “참평포럼은 노무현을 지키는 조직”이라고 했다. 도대체 누구의 공격으로부터 대통령을 지킨다는 것인가. 대통령직은 국민의 바다에 떠있는 자리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으면 참평포럼 같은 ‘특별경호대’ 100개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파당의 보스에서 국가와 국민의 지도자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임기 두 달이 남았든 석 달이 남았든 내가 가서 도장 찍어 합의하면 후임 사장(대통령)은 거부 못한다”고 했다. 무서운 얘기다. 민족의 미래가 결정될지도 모를 회담이다. 노 대통령이 그것만은 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