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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뭔 말인지 알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통치력이 약화된 노무현 정권의 신경질이 이 정권 들어 동네북이 된 언론에 다시 가해지고 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으니 당해도 싸다는 생각도 들지만, 들쑤실수록 강해지는 언론의 기질을 왜 청와대 사람들만 아랑곳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언론은 평화로움을 지극히 싫어한다. 싸움이 있는 곳에 언론이 있다. 그것이 없다면 싸움을 붙인다. 그런데 청와대가 싸움을 걸어 왔으니 언론으로서는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필자 주변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사례를 들어보자. 서울대학교에는 기자들이 상주한다. 어느 날, 갓 입사한 일 년 차 기자가 연구실로 찾아왔다. 마침 서울대학의 국제화 전략이 완료되어 그것을 무심코 건네줬다. 다음날 신문에 이런 기사가 떴다. "서울대 국제화 낙제점수." 미래정책 구상안이 '낙제'로 둔갑한 것이다. 기사의 보고인 서울대 총장은 수시로 이런 일을 당한다. '3불(不) 정신을 지키면서 대학의 자율도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발언이 "서울대 총장 3불 반대"로 바뀐다. '자율'을 자율적으로 해석한 결과 총장과 정부 간 대립구도가 만들어진다. 통일부 장관이 남북열차 시험운행의 역사적 의미를 들뜬 목소리로 강조해도 기자들은 딴청을 부린다.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어떤 정치적 흥정이 있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제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열차-승객 일인당 요금 22억원"이 된다.
이런 일은 세계 공통이고 미국은 더 심하다. 4년 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날렵한 신예 전투기를 타고 링컨호 함상에 착륙했다. 이라크에서 미국의 '임무 완료'를 선언하려는 멋진 쇼였다. 그런데, 언론은 그 다음날부터 치열한 전투장면과 전사자 뉴스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그래서 '임무완료'는 '임무시작'이 되었다. 권력자의 말일수록 의심하고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언론의 이 삐딱한 기질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게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플라이셔의 고백이다. 무엇에서든 탐지하려는 고약한 냄새를 세상의 그 어떤 향기보다 감미롭게 느끼는 기자들에게 미국은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청와대 출입은 십 년 차를 넘긴 중견기자의 몫이다. 사내에서 터프하고 똑똑하기로 이름난 기자들이 파견된다. 그런 기자들이 뉴스메이커 1호인 청와대에 '죽치고 앉아 담합해서' 기사를 쓰는지는 모르겠다. 특종이 득실득실한 그 절호의 기회를 죽치고 앉아 죽인다면 그는 이미 기자가 아니다. 대변인이나 홍보실장이 근사하게 연출하는 브리핑을 그대로 '받아쓰는' 똑똑한 기자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의 브리핑을 요즘 개그식으로 번역하면 "뭔 말인지 알지?"다. 알아들었다는 기자들의 표정에 대변인은 긴장을 놓을 터지만, 다음날 기사는 영 딴판이다. 복지정책을 발표하면 늘어날 세금을 물고 늘어지고, 주택가격 억제책을 발표하면 경기침체의 위험을 파고든다. 대통령이 1시간 연설을 해도 5초 정도의 특정 구절을 대서특필한다. 청와대는 이런 언론에 "뭔 말인지 알지?"를 수백 번 반복하다가 그만 지쳐버린 것이다. 다른 정권 같으면 그냥 지쳤을 텐데, 오기충만한 이 정권은 뭔 말인지 기어이 알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름도 근사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다.
브리핑을 그대로 받아 적는 신문은 '홍보전단지'고, 비틀고 파헤쳐서 숨은 의도를 밝히려는 신문은 '삐라'고, 이도저도 아닌 잡탕은 '지라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신문시장의 독자들 몫이다. 언론은 대체로 야당이고, 기자들은 언제나 감춰진 곳을 들춘다. 보도와 논평의 경계가 흐려지고, 날을 세우지 않은 기사를 싱거워하는 게 오늘날 신문시장의 추세일진대, 브리핑룸을 두 개로 통폐합하고 송고실을 폐쇄한들 삐라가 홍보전단지로 바뀔 것인가? 그렇게 바뀌면, 사회정의가 살아나고 생동력 있는 민주사회가 될 것인가? 청와대가 감행한 이번 조치는 정보와 공론장에 관한 1970년대의 집시법(集示法)이다. 독재정권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로 시민들의 발을 묶었다면,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민주주의 시대에 시민들의 입을 묶고 비판정신을 희석한다. 그래서, 모른다고 딱 잡아떼도 청와대에 몇 번이나 되묻고 싶은 질문이 이거다. 이 얘기가, 진정, "뭔 말인지 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