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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4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취재 통제 조치가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모든 언론단체와 관련 학계는 물론이고 여야 가릴 것 없는 전체 정치권까지 일제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여권인 통합신당이 가장 먼저 6월 임시국회에서 법을 만들어서라도 정부의 기도를 막겠다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언론 통제 방안을 만든 국정홍보처를 폐지하는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학자들은 정부 조치의 위헌성을 지적하고 있고, 법조계 인사들은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한다. 정권의 언론 공격에 자주 보조를 맞춰오던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도 “취재 선진화란 미명 아래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정부가 이 조치를 밀어붙인 과정에 대해 “독재시절에 버금갈 정도”라고 했다. 이 단체는 정권보다 한 술 더 떠 언론공격에 나서던 곳이다. 그런 눈에도 이 정부의 행태는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취재 통제 조치를 의결한 22일의 국무회의는 정말 독재시절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대통령이 “(취재방식을) 정상화하고 합리화하자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설명하자 좌중은 조용했다. 최소한의 양식만 있으면 지금 대통령이 하려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국민의 알 권리에 어떤 피해를 입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단 하나의 문제 제기도 없었다. 어느 국무위원이 백그라운드 브리핑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본 것 정도가 겨우 해본 질문 아닌 질문이었다고 한다. 독재시절 국무회의에서도 없었을 장면이다. 한 언론학자는 “이런 후진적인 조치가 행정부 최고 심의기관을 거쳤다는 것은 해외토픽감”이라고 개탄했다.
국무위원들도 두려웠을 것이다. 대통령 앞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사항이 “언론 정책이 잘못됐다”는 얘기라고 한다. 그 얘기를 꺼냈다가 무참하게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측근들조차 예외가 없다고 한다. 대통령은 언론 문제에 대해서는 이성을 잃은 상태에 있다. 지금 장관들 중에 그 앞에서 소신을 말할 용기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대통령이 “몇몇 기자가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있다”면서 외교부 등에 “해외사례를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것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 지금의 이 장관들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희극이 벌어진 곳도 다름 아닌 국무회의였다. 국무위원들은 최소한 부끄러운 줄은 알아야 한다.
사실 그들보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언론인’이란 전직(前職)을 등에 지고 이 정권에서 일자리를 얻어 밥벌이하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돌격대로 나서서 비판 신문 취재 봉쇄, 절독, 광고 배제, 공동사업 중단, 무더기 언론 소송을 해온 사람들은 대부분 언론인 출신들이었다. 대통령이 청와대와 국정홍보처에 데려다 놓은 이들 전직 기자들은 대통령 칭송에 누구보다 앞장섰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언론을 비난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났다. 언론으로서 독자들께 얼굴을 들 수 없는 심정이다.
이성 잃은 대통령과 눈치 보며 침묵하는 장관들, 그리고 언론을 팔아먹고 살다가 다시 언론을 죽이는 걸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전직(前職)들이 남은 7개월간 이런 사태를 얼마나 더 만들어낼지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