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당내 경선에 앞두고 ‘큰 전쟁’을 치르기 위한 채비에 들어간 모습이다.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을 거부하고 경선불참까지 시사하며 ‘합의한 원칙인 8월-20만명 고수’ 입장을 분명히 한 박 전 대표는 11일부터 공식일정을 잡지 않은 채 ‘장고’에 돌입했다. 캠프도 전국위원회 표대결 상황에 대비해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경선룰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은 캠프 내 그 누구보다 단호하다. 당 공식기구인 경선준비위원회에서 이미 합의가 끝난 ‘8월-20만명’안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 대표측과 중재안을 수용한 이 전 시장측이 힘을 합치는 모양새인 현 상황은 박 전 대표에게 불리하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주말동안 비공개적으로 당내외 인사를 접촉하고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숙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캠프의 ‘투쟁 의지’도 단호하다. 직접 경선불참까지 시사하며 “차라리 내가 1000표를 주겠으니 만들어 놓은 원칙대로 하자”고까지 하는 박 전 대표의 강경함에 강 대표가 중재안을 발표할 당시 캠프 내 역풍을 우려해 받아야 한다는 온건파의 목소리도 이미 사라진 상태다.
‘현행 경선룰 유지’ 입장이 개인의 유·불리에 따라 원칙을 바꿔서는 안된다는 명분을 갖췄다고 보는 박 전 대표 측은 전국위 개최(21일) 전까지 전국위원 개별 접촉과 대국민 호소를 통한 여론전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15일로 예정된 상임전국위의 경우 강 대표와 이 전 시장측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기에 중재안이 상정돼 표결에 들어간다면 불리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화력을 전국위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은 그나마 김학원 전국위원장이 “(상임전국위) 소집은 하겠지만 의안은 상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안도하는 눈치다. 곽성문 의원은 “위원장이 합의되지 않은 안을 상정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하니 표대결까지 가겠느냐”며 “상정된다고 해도 제대로 진행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곽 의원은 또한 “몇몇 언론에서 여론조사를 해 본 모양인데 표 대결까지 갔을 경우 어느 한쪽의 승부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아직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많기에 저쪽(강 대표와 이 전 시장측)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고 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전국위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여론조사 가중치를 적용한 강 대표의 중재안이 당원들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 캠프 관계자는 “‘표의 등가성’이라는 말은 쉽게 이해되지 못한다. 중재안대로 경선이 치러진다면 ‘당원은 1표, 일반국민은 2표’라고 설명할 것이다”며 “당심(黨心)이 민심(民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반영된다고 느껴지면 당원들도 중재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가 고양시 덕양 갑·을 당원교육에서 “당원들이 만든 원칙이고 당원들이 살려낸 당이다. 누구도 당을 함부로 흔들 수 없다. 당원들이 당을 지켜줘야 한다”고 호소한 것도 ‘당심 공략’ 차원이다. ‘탄핵 역풍’을 맞아 비틀거리던 당을 살려냈다는 기여도를 강조해 당원들을 결집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논란을 예상하고도 ‘1000표 발언’을 한 이유도 일반 국민보다는 경선룰 논란 과정을 꾸준히 지켜본 당원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한동안 언론사 인터뷰를 자제해 오던 박 전 대표는 10일 MBC 9시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독자 출마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탈당 우려를 불식시켰다. 당원들 사이에는 ‘이인제 효과’로 인해 탈당 후 독자 출마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하다.
캠프 의원들도 경선룰 관련 방송 토론이나 언론사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여론전을 시작했다. 강 대표가 중재안을 발표한 시점부터 김무성 유승민 이혜훈 의원 등 측근들을 연일 라디오와 TV에 출연해 중재안의 문제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중재안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내부 검토도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위 표 대결에서 패배해 중재안이 통과될 경우 위헌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만반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전국위 표결에서 패배해 중재안대로 경선이 치러진다면 최악의 상황인 박 전 대표의 ‘경선 불참’도 현실화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캠프 내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탈당 여부에 대해서는 “집이 마음에 안든다고 집주인이 나가는 것 봤느냐. 전세 사는 사람이 나가는 것이다”고 일축한다.
박 전 대표 측은 ‘원칙’을 강조하고 하며 중재안을 거부한 것이 2002년 경선 상황과 비교되는 것에 대해 강한 불쾌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선거에서 표의 등가성 원칙을 훼손했다”는 문제의 핵심을 희석시킨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2002년 경선 당시와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라며 “당시 박 전 대표는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행태에 대해 반대한 것이다. 이 총재가 당권을 물론 대선후보까지 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