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론조사 반영에 가중치를 적용한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에 대해 “거부”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0일 “이명박 후보에게 차라리 내가 1000표를 드리겠으니 만들어 놓은 원칙대로 하자고 제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직접 겨냥, 유·불리를 따져 경선룰을 바꾸지 말라는 ‘경고’다. 경선룰을 둘러싼 논란이 이 전 시장 진영의 '여론조사 4만명 고정' 주장 때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수원 경기문화의전당에서 열린 ‘경기문화포럼 창립대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한 분 때문에 당원들이 애써서 만든 공당 룰이 무너지고 당 신뢰가 떨어지고, 인식이 안좋게 나가면 안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강 대표의 중재안대로 경선룰이 바뀐다면) 그건 공당이 아니다. 얼마나 어렵게 다시 일으켜 세운 정당인데 한분의 이익 때문에 흔들리고 원칙이 무너져서는 안된다”며 “게임에서 선수들이 뛰다가 ‘이 룰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바꿨다면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대표는 경선불참과 탈당설에 대해 “내가 그런 얘기 한 적 없다”고 일축했다. 이에 대해 한 측근은 “원칙대로 하지 않는다면 경선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라며 “거부라는 카드를 내놓았는데 전국위원회에서 표 대결로 저지하겠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명박 겨냥 “경선 이렇게는 못치러” 
    “개인 이득 위해 당 흔들어선 안된다” 

    경선룰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은 간단하다. 당 경선준비기구인 ‘국민승리위원회’에서 합의한 ‘8월-20만명’ 안이 “원칙”이므로 그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경선룰을 바꾼다면) 원칙 없는 당이고 경선도 이렇게 해서는 치를 수 없다”고 ‘경선 불참’을 떠올릴 만한 발언을 한 것도 강 대표와 이 전 시장을 향해 ‘8월-20만명 합의안’을 지켜야 한다고 압박 차원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경기 고양시 여성회관에서 진행된 고양덕양 갑·을 지역 당원교육에서 “이런 식으로 원칙을 자꾸 바꾸는 당이라면 공당으로서 자격을 잃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 대부분을 강 대표가 제시한 중재안의 부당성을 역설하는 데 할애했다.

    평소보다 한톤 올라간 목소리로 경선룰에 단호한 입장을 피력하는 박 전 대표의 표정에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투쟁과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장외 투쟁 당시의 ‘여전사’ 모습으로 돌아간 듯 당원들을 향해 “앞으로 당원들이 당을 지켜줘야 한다” “여러분이 꼭 지켜주길 부탁드린다”고 현행 경선룰 사수를 직접 호소했다.

    당원교육장인 고양시 여성회관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자들에게 강 대표의 중재안 수용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거부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박힌 박 전 대표는 강연을 시작하면서부터 경선룰 변경 움직임을 맹비난했다. 박 전 대표는 “개인 이득을 위해 자꾸 당이 흔들리게 된다면 개인으로서는 유리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당을 해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정조준했다. 박 전 대표는 “지금까지 한나라당은 평화스러웠다”며 “아무도 (경선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고 어길 수 없는 원칙이라고 생각해 도지사 경선,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모두 이대로 했다. 시끄러운 적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됐느냐”고 되물었다.

    “확실하게 이길 때까지 룰 바꾸겠다고 해서 바뀌면 룰도 아니다”
    “앞으로 당원들이 당헌·당규, 원칙을 허물지 못하도록 당을 지켜줘야 한다”


    그는 “확실하게 이길 때까지 룰을 바꾸겠다는 해서 바뀌는 룰은 룰도 아니다”며 “나는 그동안 한번도 룰을 바꾸자고 요구한 적이 없다. 룰 안에서 승리를 위해 뛰고 있는데 갑자기 또 바꾸자고 요구해 온 것이다”고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경선룰을 20만명으로 늘리고 30만명으로 늘리고 자꾸 그런 식으로 하면서 합의해 달라고 요구해 와서 당이 깨질까봐 양보했다”며 “이미 합의 본 것이다. 당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얘기했기에 끝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이제는 원칙을 바꿀 수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당헌·당규에 없는 것을 들이밀고 ‘지켜라, 이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하면 어느 사람이 원칙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며 강 대표에 대한 불만도 표출했다. 

    그는 “중재안이 세 가지 우를 범하고 있다”며 “당에 뜻에 맡기겠다는 경준위 합의의 큰틀을 근본적으로 깼다. 당헌·당규를 어겼다. 민주주의 원칙을 바꾸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선거 원칙은 누구나 한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누구는 한표, 누구는 두표를 행사하는 것이 지구상에 어떤 민주주의 국가가 그러느냐”고 비난했다.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겠다는 한나라당에서 경선 방법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어기고 (후보를) 뽑고, 그렇게 해서 후보가 된들 국민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신뢰받을 수 있겠느냐”며 “당의 기본을 허물어뜨리고 노력해서 살려 놓은 당의 근본 뿌리를 흔드는 대단히 심각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오죽하면 고스톱 이야기까지 했겠느냐. 고스톱도 패 돌리고 나서 규칙을 바꾸는 법은 없다”며 “하다 못해 고스톱도 규칙이 있는데 공당인 한나라당이 경선을 치르다가 중간에 불리하다고, 바꿔달라고 바꿔주면 공당이 아닌 사당이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어 “여태까지 우리가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려 한다. 당원들이 만든 원칙이고 당원들이 살려낸 당이다”며 “누구도 당원들 앞에서 더 막강한 권한을 갖고 당을 함부로 흔들 수는 없다. 여러분이 꼭 지켜주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또 “앞으로 당원들이 당을 지켜줘야 한다”며 “당을 지킨다는 것은 당이 갖고 있는 당헌·당규 원칙을 허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원동지들이 현명하게 판단해 당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