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9일 강재섭 대표가 내놓은 경선룰 중재안에 대해 “기본합의가 무너졌고, 당헌·당규가 무너졌고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무너졌다”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나타냈다. 박 전 대표는 “참, 기가 막히다”고도 했다. 향후 박 전 대표가 강 대표의 중재안에 대한 거부 입장을 공식화할 경우 ‘빅2’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대전 중구 문화동 연정국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나라충청포럼 특강에 참석하기 전 강 대표의 중재안을 받을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그런 걸 받아들어야 할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경선룰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대변하듯 박 전 대표의 얼굴에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박 전 대표는 특강이 끝난 뒤에도 기자들과 만나 “기본 합의가 깨졌다”며 “당헌·당규 82조에도 (여론조사는) 유효 투표수의 20%로 돼 있다. 현행 당헌·당규에도 어긋난다”고 불만을 표현했다. 그는 “민주주의 원칙인 표의 등가성 원칙이 있다”며 “잘났거나 못났거나, 이 지역에 살든 저 지역에 살든 한 표다. 젊은 사람이랑 노인이 다르고, 어떤 사람 표는 인정하고 어떤 사람 표는 인정하지 않는 이런 법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당헌당규에도 어긋나고, 민주주의 기본원칙, 합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취재만 하려 하지 말고 다 어그러졌는데, 입장 바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다시 얘기하자”며 답답한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가 특강 자리를 떠나면서 마지막 남긴 말은 “참 기가 막히다”였다.

    캠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선거인단 23만1000여명 확대 등 강 대표의 중재안 내용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자 캠프 실무자는 박 전 대표에게 그에 따른 유·불리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내가 지금까지 유·불리 때문에 그런 것 같으냐”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스톱 칠 때도 룰 정해지면 치다가 바꾸지 않는다”

    박 전 대표는 이날 특강에서도 ‘경선룰 원칙 고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요즘 당 내부에서 경선룰 문제 때문에 싸우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며 “이것은 간단한 문제다. 대의명분에 따라 정해진 원칙과 약속을 지키면 된다”고 말했다. 준비된 원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타일인 박 전 대표는 이날 경선룰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좀더 시간을 할애했다. 또한 원고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을 추가해 강경함을 드러냈다.

    그는 “자꾸 룰을 흔드는 것은 어떤 개인에게는 유리할지 몰라도 당으로서는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며 “자신이 확실히 이기는 규칙이 될 때까지 규칙을 바꾸고 또 바꾸자는 식으로 하면 끝이 없다”고 이 전 시장을 겨냥했다. 그는 “정권 창출하기 위해 자꾸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잘못된 주장”이라며 “정권교체를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국민들이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이 내놓은 후보를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즉흥적으로 당내 경선을 ‘고스톱’에 비유하며 “고스톱을 칠 때도 룰이 있다. 한번 이렇게 하자고 하면 고스톱을 치다가 바꾸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국민들도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며 “자기들이 약속한 룰 하나 지키지 못하는 정당에 국민들이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가 원하는 선진국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나라다”며 “정치권부터 부패와 절연하고 법과 원칙을 지킨다면 대한민국은 반드시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정신적 가치를 함께 가진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운 당이냐. 간신히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런 일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고 개탄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오후 2시로 예정된 이날 행사에 가기 전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의원 10여명이 참석한 긴급 참모회의를 갖고 강 대표의 중재안에 대해 논의했다.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고 참모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캠프 관계자는 “죽을 줄 알면서 (중재안) 받을 수 없고, 그렇다고 안 받기에는 당 분열에 대한 역풍이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 전 대표 측은 여론조사 가중치 반영 외에도 ‘전국 동시투표’ 부분에도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