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최보식 기획취재부장이 쓴 "개는 먹이 주는 주인에겐 안 짖는 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주말 인사(人事)는 언론의 대접을 제대로 못 받았다. 그 인사를 위해 숱한 밤을 고심했을 텐데…. 언론이 대통령을 무시하려던 뜻은 없었을 것이다. 버지니아 사건의 슬픔이 모든 뉴스를 뒤덮어 그랬다.

    뒤늦게 한 자(字) 적어 성의를 표시하려 한다. 35년간 세무공무원을 했던 사람이 보훈처장으로 앉았다. 보훈처는 연금 액수를 계산할 일이 많아 세무공무원 출신이라면 믿고 맡길 만하다. 게다가 많은 세무공무원들 중에도 그는 노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사돈이다. 이번 인사는 도움을 받았으면 인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혹은 권력자에게 돈을 잘 대면 사돈까지 출세한다는 교훈을 ‘어린’ 국민들에게 남겨주는 셈이다.

    작년 지방선거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북지사 선거에 나갔다가 낙선한 이는 행정자치부 제2차관이 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보은 인사”라고만 비꼬았으나, 이 또한 숨은 뜻을 알지 못한 처사다. 현재의 행자부 장관도 경북지사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사람이다. 똑같은 낙선자라 해도 어떤 이는 장관, 어떤 이는 같은 부서의 차관으로 위계가 다르다. 인생의 오묘한 이치를 음미해볼 기회다.

    게다가 다른 낙선자들은 벌써부터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대구시장 낙선자는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대전시장 낙선자는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전남지사 낙선자는 사학연금공단 이사장 등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짭짤한’ 자리다. 광주시장 낙선자는 대통령정무특보로 권부(權府)의 곁을 맴돌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만연한 실직 고민 따위는 이들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그러니 행자부 차관이 된 이에게는 오히려 ‘차관직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해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게 아름다운 사회다. 이 모든 경우를 관통하는 교훈이 없을 수 없다. 권력자의 지시에 따라 출마하고 말을 잘 받들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현정권을 위해서라면 그전까지 했던 말을 바꾸고, 배웠던 공부를 바꾸고, 알고 있는 사실을 바꾸고, 혹 살아온 소신이 있다면 그것까지 바꾸는 데 이력이 생겼다. 그래서 현재의 충성심으로 따지면 역대 정권 사상 ‘최강’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광경이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고, 세간의 사람들만 이상하게 여길 따름이다.

    마침 중국의 사기(史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도척(유명한 도적)의 개가 ‘요 임금’을 향해서도 마구 짖는 것은 요 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니다. 개란 본디 먹이를 주는 그 주인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오직 내 주군만을 알았고 지금의 폐하는 알지 못했다.”

    현 정권이 챙겨줘야 할 사람들의 줄은 여전히 길게 늘어서 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욱 분발해 인사 교체에 속도를 더 내야 할 것이다. 장관은 열흘을 맡아도 가문의 영광이요 족보에는 장관이다. 그런 만큼 “장관직은 임기 2년~2년 반을 보장할 것”이라는 취임 초 대통령의 발언이 실천된 적도 없지만, 새삼 이를 떠올려도 숱한 대기자들이 실망할지 모른다. 대통령 임기를 하루 남겨둘 때까지 계속 챙겨줄 사람을 챙기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인사가 ‘버지니아 사건’의 슬픔 때문에 덜 주목 받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 않다. 현 정권 내내 같은 인사가 늘 반복됐으니 더 이상 언론은 새롭게 쓸 내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혹 인사에 대해 세상의 절망적 한숨을 듣는다면, 이는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임을 내세워 모든 시비를 차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