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포럼'에 오성삼 건국대 교육대학원장이 쓴 <3불(不) 아닌 다른 ‘1불(不)’이면 족하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80년대 초 미국 유학 시절, 수업시간에 미국인 교수가 일간 신문에 소개된 한국의 교육 관련 기사를 들고 왔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사교육 억제정책으로 가정교사를 하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끌려가고, 과외를 시키던 가장들이 세무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교육 개혁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공부를 게을리하는 문제 때문에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국가의 공권력이 동원돼 공부시키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있으니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국가가 대학을 간섭하는 3불(不)정책을 놓고 찬반 논란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참아왔던 대학 총장들의 강한 불만에 교육부총리는 물론 대통령마저 3불정책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때마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고등교육 보고서’를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3불정책은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통제는 대학의 자체 관리능력을 약화시켜서 마침내는 대학들이 자기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고 정부가 감사를 더 강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는 점도 일러두고 있다.

    3불정책이 지향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나 ‘기회의 평등화’가 좋은 가치임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차세대 어느 누군가는 밤새워 공부를 해야 하고 남들이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가정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특목고를 다녔든 평준화고를 다녔든, 거주지역이 강남이든 강북이든 그런 것이 대학입시의 당락을 결정하는 요인이 돼서는 안 된다. 누구든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갖춘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제도가 올바른 제도다. “일본이 앞서 가고 중국이 쫓아오고 있다”는 ‘샌드위치 대한민국’이기에 더욱 그렇다.

    세계 어느 나라도, 밤늦도록 학교와 학원에 남아 공부하겠다는 학생들을 국가가 나서서 쫓아내지는 않는다. 학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 곤혹스럽게 만드는 나라는 더욱 없다. 지금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3불정책을 국제사회에 물어 보라. 어떤 대답을 얻게 될 것인가.

    3불정책이 몰고 온 죽음의 트라이앵글(수능·내신·논술)은 교육청이 단속의 칼을 뽑아들어야 할 만큼 사교육을 번창시켰고, 고교등급화 금지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학부모의 상당수가 특목고와 자사고를 선호하고 있다. 해마다 치솟는 대학등록금에도 불구하고 기여입학제는 거론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3불정책이 취약계층을 어느 정도나 보호해 줄 것인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농어촌 지역 출신이나 실업계 출신 학생들의 대입 문호를 넓혀 주었지만 상당수 학생이 입학후 학사경고나 중도탈락의 패배로 좌절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에는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대학이 417개나 존재한다. 고교에만 학력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대학에도 존재한다. 3불의 취지를 입시에 반영하려는 대학도 있을 것이고, 학업성적 위주로 선발해야 하는 대학과 전공 분야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3불이고 뭐고 제발 학생 수나 좀 채웠으면 좋겠다는 대학들은 왜 없겠는가. 3불정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국가는 간섭 대신에 어느 대학을 나와도 능력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정의사회를 만드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에 대한 정부의 요구는 지금의 3불이 아니라 ‘부정과 편견에 의한 신입생 선발을 금지하는 것’ 그것 하나(1불)로 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