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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화법이 달라졌다. 최근 전국투어를 하며 지역 당원들과 접촉하고 있는 박 전 대표는 이전과 달리 당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 국가관 안보관에 대해 믿을 수 있습니까" "나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당원들은 "네"하며 박수갈채로 화답한다. 그러면 박 전 대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항상 국민의 '신뢰'와 '믿음'이 뒷받침 돼야 국가지도자가 추진하는 정책이 이행될 수 있고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박 전 대표는 당원들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다. 그만큼 816일의 대표 재임기간에 떳떳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19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자신의 텃밭인 대구·경북(TK)지역을 방문했다. 지난달 말부터 전국 지방투어를 하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일정은 매우 빠듯하다. 동행하는 기자들조차 박 전 대표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번 TK방문에서도 행정구역 기준 총 15개 지역을 방문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동행취재를 하는 취재진은 정작 박 전 대표를 만날 시간이 부족해 취재가 잘 안된다고 불평을 쏟아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20일 경주에서 취재진과의 만찬자리를 마련했다.
박 전 대표 측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말해 취재진은 평소 늘 갖고 다니던 수첩과 펜도 꺼내지 않고 박 전 대표와 1시간여 동안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2시간여 동안의 만찬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테이블 마다 들러 취재진과 접촉했고 비록 자신은 마시지 않았지만 취재진에게 폭탄주도 직접 만들어 돌렸다. 폭탄주를 만드는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한두번 만든 솜씨는 아닌 듯 싶었다.
술이 한두잔 돌자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다. 가장 큰 화두는 최근 달라진 박 전 대표의 화법이었다. 박 전 대표는 19일 김천 당원간담회에서 "정권을 확 바꾸고 (대통령도)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자"며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의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다. 당시 취재진과 주변의 당원들은 이전과 달리 과감하고 적극적인 박 전 대표의 모습에 놀랐다.
그 뒤로 박 전 대표는 당원들을 만날 때 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자"고 말한다. 이 말은 이번 박 전 대표의 TK방문 최고 유행어가 됐다. 이날 만찬에서 건배사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자"였고 동행한 의원들의 입에서는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게 가장 큰 개혁"이라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이 말은 처음 하신 거죠?'라고 묻자 박 전 대표는 "처음이죠"라고 한 뒤 "정권도 확 바꾸고, 바꾸는 김에 대통령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죠"라고 했다.
달라진 화법에 대해서도 물었다. "최근 화법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당원들에게 '나를 믿으십니까. 신뢰하십니까'라고 묻던데 달라진 계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박 전 대표는 "그동안 내가 해놓은 게 있으니까 당원들에게 묻는 것이다. 해놓은 게 아무 것도 없으면 물을 수 있겠느냐"고 답했다. "대표 시절부터 국가관이나 안보관 등에 대해 다 보여줬다"고도 했다. 당원들에게 자신에 대한 평가를 직접 물을 수 있을 만큼 자신감에 차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겨냥해 "공천을 미끼로 줄 세우기가 횡행하고 구태 등으로 당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또 구태로 돌아가거나 물을 흐리고 과거로 회귀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연일 경고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도 확고했다. 그는 "정당과 정치가 바로서지 않고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 하는 사람들이 바로서지 않는데 부패가 근절되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부패정당이란 한나라당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그동안 자신이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데 다시 그런 비판을 받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게 박 전 대표의 판단이다. 그는 "개인 사리사욕 때문에 정당개혁이 다시 후퇴해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 전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전 대표는 요즘 손에 파스를 붙이고 다닌다. 전국투어를 하며 여러 사람과 악수를 나눠 통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2004년 총선 유세 때는 붕대를 감기도 했다. 이날도 "손이 많이 아프다" "아리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양손에 총 7개의 파스를 붙였다. 악수를 하는 오른손에 6개, 왼손에 1개를 붙였다. 오른손 검지는 삐었다고 한다. 그래도 박 전 대표는 이날도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측근들은 "남자도 하기 힘들다"며 박 전 대표의 강행군에 혀를 내두른다.
5·31 지방선거 유세 당시 테러 사건에 대해 물었다. 취재진이 "테러 이후 많은 대중들을 접촉하는 것이 무섭고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중들과 거리낌 없이 접촉하고 있다. 상당히 강인한 것 같다"고 말하자 박 전 대표는 "나는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를 지원하는 의원들은 "배짱은 남자도 못 따라간다"고 한다. 이 전 시장에게 지지율은 뒤쳐져 있고 대표 시절 자신을 따라다니던 일부 의원들이 이 전 시장으로 돌아서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는 "어려울수록 상대방의 진심을 알 수 있다"며 오히려 위기가 자신에게는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탓인지 박 전 대표는 바쁜 걸음 속에서도 여유롭고 자신감이 충분한 모습이다.[=경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