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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이 쓴 '대통령 훈수가 맞긴 맞는 것 같은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실물 경제 좀 안다고,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 잘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 31대 대통령 후버의 기업가 경력은 휘황찬란했다. 광산업과 토목업을 아우르는 다국적 기업을 창업해 30대 후반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1300만명의 미국 국민을 실업자로 길거리에 내몰고 말았다. 10여 년 전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출신의 멕시코 대통령은 머릿속 가득한 경제 지식으로 나라 경제를 풍비박산 내고선 미국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노 대통령은 또 “경제를 살린 대통령으론 영화배우 출신도 있고, 정치인 출신도 있다”고도 했다. 사실 그렇다. 이류 배우 출신의 대통령 레이건은 도덕 선생 흉내를 내던 전임자 카터가 망쳐 놓은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성공한 사업가 후버가 쑥대밭을 만들었던 미국 경제에 새 숨결을 불어넣은 인물은 ‘경제학의 경(經)자(字)’도 잘 모르던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은 정치를 잘 알고 가치 지향이 분명하고 정책 대안이 뚜렷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역시 그른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게 옳은 말, 바른 말, 이치에 맞는 말만 가려 해 온 대통령이 어찌하여 친정인 열린우리당에서 등을 떠밀려 밀려나게 됐을까. 당이나 대통령이나 고만고만하긴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며칠 전 이런 의문을 풀어줄 미국발 소식이 날아들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올해 미국 국민을 상대로 ‘역사상 최고 대통령은 누구냐’를 물은 조사에서 레이건이 2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1위는 물론 링컨이다. 역사에 그리 밝지 않은 일반 국민들의 역대 대통령 평가는 그때그때의 세상 형편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1999년 이후 7차례 실시한 조사에서 노 대통령이 ‘영화배우 출신’이라고 부른 레이건이 노 대통령이 ‘그렇게 존경하는’ 링컨을 누르고 2차례나 1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레이건의 성공 비결은 하나다. 말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 국민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기술이다. 대통령이 된 다음 그는 말을 통해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던 국민 숫자보다 더 많은 국민을 자신의 정치 목표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려 놓았다. 연설 횟수가 늘면 지지자도 함께 늘어났다.
레이건의 말은 늘 쉽고 따뜻했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도 일반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가나 세금이란 간단한 단어로 쉽게 말했다. 골치 아픈 경제 용어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연설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불렀던 대통령이다. 그런 레이건이지만 대통령으로선 단 한 번도 국민의 일부를 적으로 몰아세운 적이 없다. 레이건의 적은 소련 하나로 충분했다. 그의 연설은 언제나 초대장이었다. 이 초대장은 동지와 경쟁자에게 함께 보내졌다. “가슴 설레는 미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내용이었다. 레이건에게 ‘위대한 전달자(Great Communicator)’라는 영예스러운 호칭이 주어질 만한 것이다.
정치는 전달과 소통의 기술이다. 레이건은 여기서 성공했기에 대통령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때론 링컨과 경쟁하는 과분한 호사까지 누리게 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얼마 전 재임 중 가장 어려웠던 일로 “국민과 소통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뜻을 국민에게 전하기 어려웠고 국민과 마음을 함께 나누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대통령의 성공 여부는 더 물을 것이 없다.
레이건을 오래 보좌했던 그의 측근은 레이건 8년을 이렇게 요약했다. “레이건은 자기보다 우수한 사람들로 자기를 둘러싸고, 그들에게 일을 맡기고선 간섭하지 않았고, 지나간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으며, 지금의 어려움을 전임자나 경쟁자 탓으로 돌리지 않았고,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리고, 그 성패의 책임 역시 자신이 졌다.”
만약 우리 대통령이 자신의 후임자에게 ‘대통령의 성공학’을 이렇게 요약해 물려줄 수 있는 처지만 된다면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 이 나라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