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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분열로 엉겹결에 원내 제1당이 된 한나라당은 의석수가 가장 많다는 점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스스로도 "원해서 이뤄진 일이 아니다"며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부담은 커진 반면 이득은 없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판단이다. 한나라당 몫의 국고보조금도 크게 줄어 당장 돈 걱정까지 해야 한다.
탈당의원들이 교섭단체를 등록하면서 한나라당의 국회운영은 이전 보다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래서 2월 임시국회의 법안처리도 난항을 예상하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은 이런 상황을 만든 책임을 분열된 여권 탓으로 돌릴 태세다. 멀쩡한 당을 쪼개는 것은 "반한나라당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특정정당에 반대하려고 연합하고, 멀쩡한 정당을 깨고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기에 국민의 시선이 따가운 것"이라고 비판한다.
1당이 된 이후 처음 갖는 2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재개정,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정치공작근절법 등의 처리를 목표로 하고 바다이야기와 제이유 게이트 특검 실시, 국군포로 북송 사태 국정조사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나라당은 13일 상임위원회 간사단 회의를 개최했다. 본격적인 상임위원회 활동이 시작되는 만큼 법안처리를 위한 대책과 전략을 논의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이날 회의에 참석해야할 인원은 원내사령탑인 김형오 원내대표와 전재희 정책위의장을 비롯 19개의 상임위원회 간사들과 5명의 정조위원장, 10명의 부대표단을 포함 총 35명. 예정된 회의 시간은 9시였다. 그러나 회의시간 전에 미리 도착한 의원은 8명에 불과했다. 김 원내대표가 3분이 지나서야 회의장에 도착했고 10분이 지날 때까지 참석 인원은 17명 뿐이었다. 절반이 넘는 18명이 참석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이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사무처 직원에게 "아직 참석하지 않은 상임위 간사들에게 마지막으로 출석체크 좀 해달라"고 요구했다.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을 했는지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회의를 진행했고 인사말을 위해 마이크를 잡은 김 원내대표는 "9시 회의였는데 사정상 10분이 지나서야 회의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어야 했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자당이 원내 제1당이 돼 책임이 막중해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3일간 진행된 대정부 질문에서 소속 의원들의 본회의 출석률이 낮았던 점을 지적했다.
이때 의원 6명이 회의장에 들어왔고 회의는 잠시 어수선해졌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김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저조한 본회의 출석률을 다시 지적하며 "10년만에 집권을 목표로 하고 대선승리를 눈앞에 두겠다는 한나라당이 이렇게 잦은 이석을 하는게 집권의지가 있는 것인지, 말로만 있는게 아닌지 국민에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자성했다. 이어 "남만 탓해서는 결코 집권은 이뤄질 수 없다"고도 했다.
이어 전재희 정책위의장이 각 상임위 간사들에게 2월 임시국회의 운영방향을 제시했다. 시간은 38분이 지난 상태였고 이때 한 의원이 회의장에 입장했다. 이 때문에 전날 여수출입국 관리소의 화재 사건을 보고하던 이주영 수석정조위원장의 보고는 잠시 흐름이 끊겼다. 이 수석정조위원장의 보고이후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때 시간은 9시 45분. 취재진이 회의장 밖을 빠져나오자 그제서야 회의장을 찾는 의원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날 회의에 참석한 총 인원은 27명. 이날 회의 내내 전화기를 들고 자주 회의장을 떠나는 의원도 있는가 하면, 회의 도중 옆 의원들끼리 담소를 나누며 웃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느 때 보다 한나라당의 책임이 막중한 2월 임시국회를 위해 모인 제1당의 회의로는 부적절한 모습이었다. 1당에 대한 책임은 부담스러워 하는 반면, 1당으로 챙길 수 있는 몫에 대해선 확실히 챙기려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날 10여분간 마이크를 잡은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여당 분열로 국회운영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며 각 상임위 위원장 및 상임위원수 재조정, 본회의장 좌석재배치 등 1당이 되면서 한나라당이 챙겨야 할 부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는 "오늘 이후 각 교섭단체별 상임위 위원 수가 재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임위 회의를 여는 데 대해서는 원내대표단과 먼저 협의한 후 대처해 달라"고 주문했다. 1당으로서 한나라당이 가져야 할 몫을 챙기지 못한 상황에서는 국회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