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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9일자 '기자수첩'란에 이 신문 정혜전 경제부 기자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4년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발표를 듣는 것 같네요.”
병역제도 개편안, 균형발전정책 등 정부가 숨가쁘게 내놓는 중장기 정책에 대해 한 경제학 교수는 이런 촌평(寸評)을 내놓았다. 대선 승리의 축제 분위기가 가시지 않은 속에서 대통령 인수위가 100대 과제를 떠들썩하게 내놓던 모양과 닮았다는 것이다.
7일 오전 10시 과천 정부청사 제3브리핑룸. 이날 정부는 ‘2단계 국가균형발전정책’을 발표했는데, 그 핵심 대책인 지방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하 방안을 묻자 강태혁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획단장의 입에서 이런 답변이 흘러 나왔다. “법인세를 어떻게 경감해줄지 구체적 방안은 관계부처 간 합의가 안 됐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달 26일 취재차 만난 경제부처의 고위 관료는 기자에게 임대주택펀드 얘기를 하면서 “지금은 내 머릿속 아이디어 수준이고, 백지상태에서 선 하나 그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닷새 후 90조원대 임대주택펀드 조성을 내용으로 하는 ‘1·31대책’이 발표됐다. 수조원, 수십조원의 천문학적 재원이 소요되고 10년 이상 걸리는 중장기 대책들이 제대로 검토·토론조차 되지 않은 채 며칠 만에 급조(急造)돼 나온다는 얘기다. 이런 일이 지금 관청가에선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왜 이렇게 중장기 대책을 쏟아낼까 궁금했는데, 마침 노무현 대통령이 답을 주었다. “다음 정부가 이 정책을 채택하고, 공약하게 하도록…이때 말뚝을 박아야 한다. 대못을 박아야 한다”(7일, 균형발전정책 대국민 보고회)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급조된 정책이야말로 나라 살림에 ‘대못’을 박을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돌아올 후유증과 막대한 재정부담을 생각하면 온 국민들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