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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5일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머리를 올려 핀을 꽂는 일명 '육영수 스타일' 대신 뒷머리를 풀어 보다 젊고 활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자신의 여의도 사무실로 기자들을 부른 박 전 대표는 이날 평소와 달리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자들은 박 전 대표의 확 바뀐 헤어스타일에 놀랐고 대화할 때 커진 제스처와 힘 실린 목소리에서 박 전 대표의 변화를 감지했다. 기자들이 머리 모양을 바꾼 이유를 묻자 "워밍업은 끝났다"고 답했다. 본격적인 대선레이스에 돌입하겠다는 뜻으로 라이벌인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네거티브' 논란을 촉발시킨 유승민 의원의 '후보검증' 주장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고 "검증은 당연히 필요하다"며 오히려 이 전 시장에 대한 공세수위를 높였다. '후보검증'주장이 우발적으로 던진게 아닌 사전에 준비한 카드였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가 자제를 요구하고 있고 비판의 목소리도 높지만 박 전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후보검증'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특히 검증의 부분을 설명하는 도중 박 전 대표는 "개인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 후보로 나가는 것인 만큼 (후보가)당의 이념·정책·노선과 맞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념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들어 보수와 진보진영 사이에서 가장 극한 이념대립을 촉발시킨 법안은 국가보안법이며 국보법 사수의 선두에 섰던 인물은 바로 박 전 대표다.
노 정권의 국보법 폐지 주장에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걸고 막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대선후보 중 가장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고있다.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유승민 의원은 언론인터뷰에서 "전향적인 대북정책이 나올 가능성은 있지만 박 전 대표가 2년 전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했던 기조를 바꾸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제분야가 가장 폭발력이 큰 대선 이슈로 부각돼 있지만 '북핵'이란 메가톤 급 변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대선 이슈 중 하나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이 북한의 핵실험 속에서 치러지는 만큼 '대북정책'은 유권자의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근자에 가장 큰 간첩단 사건으로 꼽힌 일심회 사건에서 보듯 우리 사회 곳곳에 친북세력에 침투해 있음이 드러났고 북한은 노골적으로 대선개입 의사를 밝히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반(反)보수대연합을 실현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친미보수세력을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이번 대선은 '안보'가 어느 선거 때 보다 주요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박 전 대표도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식으로 정부가 (북한에) 끌려 다니다가는 올해 있을 대선이 여(與)와 야(野)의 대결이 아닌 '야당 대 북한과 여당'의 합작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 분위기가 이념대결로 흐를 경우 상대적으로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고 박 전 대표가 '이념검증'카드를 꺼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읽힌다.
현 정권들어 우리사회의 보수화 경향이 뚜렷해진 점 역시 박 전 대표로 하여금 '이념논쟁'에 불을 당기게 하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40대 후반 및 50대 이상은 물론 30대 이하 연령층에서도 이념적으로 보수가 강세를 나타냈다. 신년초 발표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19~24세의 50.6%가 선호정당으로 한나라당을 택했다. 40대 후반(53.6%)과 50대 이상(61.3%) 등 부모세대와 함께 50% 이상을 기록한 것이다. 20대의 이념 역시 지난 2002년 대선과 달리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다.
이 전 시장에 크게 뒤져있지만 박 전 대표의 추격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여권에선 '남북정상회담 추진설' '특사 교환 임박설'까지 나오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계속 방북가능성을 시사하며 대선에 개입할 의중을 내비치고 있고 여권은 남북문제를 이슈로 부각시켜 선거를 '이념대결'로 몰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권의 정계개편, 남북 정상회담 등 정치적 이벤트를 계기로 역전을 준비하는 박 전 대표의 '이념검증'카드가 얼마만큼의 효과를 가져올 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