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며칠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지만 사퇴를 지켜보는 마음도 정말 편치 않군요. 

    경제전공자 경제부 기자 출신의 분께 외람된 줄은 알지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러나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현 상황의 근본원인을 ‘정책부실(不實)’이 아니라 ‘정책불신(不信)’이라고 강조하시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라는 것. 즉 모든 '정책'은 기본적으로 '불신의 대상'이기 마련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특히 시장(市場)이 볼 때 정책담당자가 경험과 역량이 충분히 않다고 판단될 때 더욱 그렇겠지요. 경우에 따라 정부는 결과적으로 시장에 '농락'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책 수립 및 결정자 그리고 정책수행자의 진심과 도덕성은 차후의 문제이며 특히 부동산 같은 경제 관련정책이 효과를 보이는 데 결정적인 요인은 되지 못하는 듯합니다. 진심과 도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량으로 발휘되는 분야도 있겠지만 경제는 좀 다릅니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이며 더구나 오늘날 그것은 너무나도 영악해져 있습니다. 그런 시장의 생리를 좀 더 연구하고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시장에 대고 정책을 믿고 따라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혹은 닳고 달은) 시장을 상대하는 사람으로서 기본도 모르는 소리 같습니다. 정책이란 가능한 한 시장의 그 모든 생리와 동향을 예측하고 읽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정책은 그것을 바탕으로 수립되고 추진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부의 역량일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진실과 의욕만으로 상대하기에 오늘날의 시장은 벅찬 상대입니다. 진심과 의욕 이상으로, 때로는 노회하리만치 시장의 생리를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과거 정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성을 보였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나름의 긍정적 변화를 앞당기고 가시화시켰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에만 의지하기엔 오늘날 우리의 정치 경제 외교 현실이 너무나 냉엄합니다. 스스로의 역량에 한계를 느낀다면, 최소한 ‘코드’와 무관하게 유능한 전문가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장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정책도 궁극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의 성공은 정책수립자들에게는 ‘잘 짜인’ 것으로 보이는 정책 자체보다는 결국 ‘시장의 신뢰’를 얻음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자기생존 논리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가진 존재로 인정받는 데서 시작될 것 같습니다. 저 같이 경제전문가도 아닌 일반 시민의 눈에도 그게 보입니다. 상식으로 생각됩니다.

    '정책부실'이 아니라 ‘정책불신’ 때문이라는 건 순진한 패배자의 넋두리로밖에 들리지 않는군요.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면 심지어 화가 나고 지겹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비단 이백만 홍보수석 뿐만이 아니라 참여정부 스스로가 역량부족과 실패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정치집단으로서 그 진퇴 및 진로와 미래를 구상해야 하리라 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건대, 모든 ‘정책’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불신의 대상’입니다. 시장에 있어서 정책이란 '믿고 따라야' 할 권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철저히 이용 또는 역이용해야 할 생존환경 내지 여건일뿐입니다. 따라서 ‘정책의 시작’은 시장의 생리를 이해하고 그 신뢰를 얻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정책의 성공’을 위한 기본 요건일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과 의지가 복잡하게 얽히고 충돌하는 생존 현장으로서의 시장, 그것의 생리를 먼저 탓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시장의 개혁은 시장의 논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 아닙니까? 보다 풍요롭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그런 시장의 생리와 동향을 꿰뚫어보면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순화시켜가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20세기의 경험을 통해 인류는 기본적으로 이 이상의 대안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봅니다.

    현재의 시장은 본능적으로 나름의 논리에 의해 기능할 뿐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윤택함을 위해 필요하긴 하지만 그리 인간적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근대 초기자본주의 시대 즉 국가주의 시대에 부소불위의 ‘국가권력’이 거대하고 막강한 상상의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된 바 있지만 현대사회의 ‘리바이어던’은 바로 시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활력을 유지시키는 한편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성에 위배되지 않도록 순화시키며 인간의 삶을 가꾸어갈 것인지에 인류의 미래는 달려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권력을 기대합니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