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노무현의 7년 언론전쟁'은 계속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부터 언론을 원수 대하듯 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서울 종로 재·보선에서 당선돼 6년 만에 원내(院內)로 복귀한 뒤 한동안은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2002년 대선을 염두에 둔 듯 “앞으로 많이 도와 달라”는 말을 하곤 했고 평소 거리를 뒀던 언론사의 간부들을 따로 만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언론 전쟁이 시작된 것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인 2001년 2월 기자간담회에서였다. 노 장관은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를 얘기하면서 “언론과의 전쟁 선포도 불사해야 한다. 언론과 맞붙어 싸울 수 있는 기개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의도했던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 발언은 ‘정치인 노무현’의 행로를 정하는 갈림길이 됐다. 특정 신문에 대한 안티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언론과의 전쟁 선포 발언을 계기로 노 대통령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민주당 내에 이렇다 할 기반이 없던 노 대통령이 자신을 위해 열성적으로 뛰어줄 조직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후 노 대통령은 언론과 의도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정치 동력으로 활용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노 대통령 쪽으로 기울었던 2002년 4월 초 노 대통령은 인천의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노무현 예비후보에게 “후보가 된 후에도 특정 언론과 계속 싸울 것이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노 후보는 “여태까지는 내가 언론에 비해 약자였다. 그러나 여당의 대선후보쯤 되면 입장이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여당의 대선후보 전(前) 단계인 대선주자는 언론보다 힘이 약하고, 여당의 대선후보는 언론보다 힘이 세다’는 것이 당시 노 후보 머릿속에 들어 있던 역학구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언론보다 힘이 센 여당 대선후보가 되면 언론과 그만 싸우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2002년 4월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에도 ‘노무현의 언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노 후보에게 언론관계 개선을 건의했던 한 측근은 노 후보가 “언론과 화해하면 지지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노 후보는 언론과의 싸움이 자신의 정치 기반이 돼 버린 현실에 이미 포로가 돼 있었던 것이다.
정치인 노무현이 여당 대선후보보다 몇 곱절 힘이 센 대통령이 된 후에도 사정은 바뀌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제기한 모든 쟁점들을 언론과의 전쟁 구도로 몰고 갔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광화문에 큰 빌딩을 가진 언론과의 싸움’이었고, 부동산 대책은 ‘건설광고 수주를 위해 부동산값을 부추기는 언론과의 싸움’이었으며, 전작권 단독행사 문제는 ‘2007년 대선을 위해 보수세력을 결집하려는 언론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2001년 2월 시작된 ‘노(盧)의 언론 전쟁’은 2008년 2월 대통령 퇴임 때까지 계속된다고 체념할밖에.
그런데 그것도 아니란다. 7년 전쟁으로도 안 끝난다는 말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노사모 회원들을 만나 “남을 때려 놓고 ‘왜 때리느냐’고 항의하면 ‘이 자식이 어디다 대고 대꾸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언론이다. 지난 대선 때 정치언론의 포격에도 견뎌냈는데 그걸 다시 끌고 나가 볼까 한다. 언론문제는 임기가 끝난 후에도 손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언론은 민심의 바람 따라 도는 풍차(風車)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그 풍차를 괴물이라고 부르며 돌진해 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언론과 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자기 최면을 걸다 보니 이제 정말 풍차가 괴물로 보이는 돈키호테 증후군에 걸린 모양이다. 그래서 퇴임 후도 언론 전쟁 연장전을 치를 각오라는 얘기다.
2008년 2월 이후 어느 날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 특정 신문의 안티운동 대표가 됐다”는 해외토픽 기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나라 체면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