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7일 사설 '햇볕 아래서 서울 거리 활보하던 간첩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가정보원이 간첩 혐의로 5명을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 그중에 포함된 민주노동당 전·현직 간부 2명은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과 1987년 6월 시위 전과를 민주화 유공으로 인정받아 각각 4000만원과 900만원 가까운 보상까지 받았던 사람들이다.

    지난 7월 붙잡힌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 정경학은 북한이 현재 당 중앙위원회 산하 ‘35호실’ ‘통일선전부’ ‘대외연락부’ ‘작전부’와 인민군 총참모부 아래 ‘정찰국’ ‘국가안전보위부’ 등 모두 6개의 대남 공작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중 ‘35호실’은 1996년 김정일이 “이스라엘 모사드 같은 작고 단단한 조직을 만들라”고 특별 지시해 만든 부서라고 한다. 햇볕정책으로 침투 간첩 자체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증언이다. 그런데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1998년부터 수사기관이 파악한 숫자는 검거된 간첩과 자수한 간첩을 포함해 고작 한 해 4명꼴이다.

    독일 통일 전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가 서독에 잠입시킨 간첩과 간첩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협력자의 숫자가 줄잡아 2만~3만명이었다. 동독은 망해가는 공산 독재정권을 지키려고 동서 대결시대보다 더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스파이 공작에 쏟아부었다. 정계·경제계·노조·학계·종교계·대학 할 것 없이 서독 모든 분야에 첩자를 심어 동독에 유리한 정책을 만들게 하고, 동독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을 제거하고, 서독의 여론을 균열시켰다. 슈타지는 동독편을 들어야 ‘진보’ 소리를 듣는 지식인사회에 들어가 동조자를 첩자로 포섭하고,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나치에 부역했던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나중에 브란트 총리의 심복 비서, 집권 사민당 원내총무, 훔볼트대 총장, 수많은 정치지도자·장교·작가·과학자·외교관·언론인·종교인들이 동독 첩자 또는 적극적 정보 제공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체포된 간첩 혐의자들은 대부분 40대 초반의 ‘386’운동권 출신들이다. 이들이 활동하던 1980년대 중후반은 ‘반미’와 ‘자주’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주체사상파가 대학의 학생운동을 장악했던 시절이다. 시위현장에선 북한 방송이 시키는 대로 구호를 외치는 것이 일상화됐고 일부 운동권 핵심들은 북한 노동당 입당 선서를 했다. 그 대열에 직접 서 있었거나 그들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386세대가 지금 나라 요소요소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이 과거에 이렇게 인연을 맺었던 동조자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썩히고만 있겠는가. 국정원의 책임이 막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