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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는 대립문제가 최고 화두 되어 버렸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좌파와 우파의 갈등, 또한 정치적 갈등 등 한반도 정세는 급변하게 돌아가고 있는 시점에 우리는 모든 사안에 이분법적 갈등 구조의 내홍을 겪고 있다. ‘한미 전시작전권’, ‘북한 핵문제’, ‘한미FTA´ 등 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시점에도 우리는 갈등의 고리는 놓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똘레랑스(tolerance)’ 말이 있다. 이 정신을 통하여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 난국의 헤쳐 나가는 지혜를 갖기를 바란다.
영화 여왕 마고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성 바돌로매 축일 대학살은 1572년 8월 23일, 프랑스 왕의 누이인 마가렛 발로와 나바라 앙리의 결혼식 직후에 시작되었다. 구교인 가톨릭 세력과 신교인 위그노 세력의 갈등으로 1만3000여 명의 위그노들이 학살을 당한 사건이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2500만 명이 되었던 프랑스 인구를 생각해 보면 커다란 희생이었다.
4년 후에 칼뱅주의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프랑스 왕 앙리(Henry) 4세는 1598년 낭트 칙령(the edict of Nantes)을 선포함으로 종교적 관용(religious toleration)을 실현하였다. 종교적 관용의 ‘똘레랑스(tolerance)’는 프랑스어로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쟁은 우리 역사의 곳곳에서도 흔적으로 남아 있다. 당리당략을 좇아 나라의 위기를 자초하기까지 한 갈등의 역사는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더구나 군사정권의 획일적 통제에서 벗어난 국민들의 묵혔던 감정이 저마다의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문제는 각계각층이 저마다의 이익 욕구를 굽히지 않는 데 있다. 사회적 기반을 유지하면서 모든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
'왜 똘레랑스인가?'의 저자 필리프 사시에는 역자 홍세화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견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워진 부담을 견디는 것처럼 말입니다. 추상적 의미로서 똘레랑스 한다는 것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을 용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대로 용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의도적인 자세입니다. 또한 용인이지만, 의도적인 용인이라는 점에서, 무관심이나 포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라고 밝혔다.
똘레랑스의 역사적 기원이 종교적 갈등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사상이나 이념의 차이보다는 더 한 것이 종교적 갈등이다. 이 종교적 갈등마저도 서로 용인하고 인정하므로 써 국가적 위기 대처했듯이,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과 사회지도자들에게 ‘뚤레랑스’의 결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한반도 정세는 북한이 ‘핵실험 카드’ 들고 최후의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는 시점이다. 북한은 매번 그랬듯이 이 히든카드를 이용, 한반도 주변국들을 긴장케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태도에 대해 주변국들의 모양새들은 그리 좋지 않다는 게 큰 문제이다.
미국의 부시정부는 강경 일변도의 고수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일본의 경우 아베 총리는 이번 문제를 한반도 교차 정상회담을 통해 강력하게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 대륙탄도 미사일 실험 때에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중국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시점이다. 중국 역시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입장이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에 대해 절대 불가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것을 내다보는 정부와 청와대, 그리고 각 당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적어도 한반도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한다. 이때는 우리의 국력을 모아 지혜롭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즉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적 위기에 머리는 맞대고, 위기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과 미국이 변수가 될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내부소리가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면 결국 우리나라는 이 난국에서 제외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때에 ‘똘레랑스’의 정신으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용인해서 이 난국을 벗어난 지혜를 한데 모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