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 특파원이 쓴 '기로에 선 대한민국'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황장엽 회고록' 개정판이 지난주에 나왔다. 망명 생활 10년에 대한 소회가 새로 추가됐다. 황씨의 회고는 오판에 대한 회한으로 시작된다.

    "내가 북한을 떠나던 1997년 초 북한은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붕괴될 것이라고 믿었다." 한국행을 결행할 당시 북한에서 가동되는 공장이라곤 군수공장들뿐이었고, 그것들도 5년만 더 지나면 고철더미가 될 판이었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자동으로 무장해제될 걸로 봤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예측이 빗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국에 와서야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북한의 붕괴를 가장 바라는 나라가 한국일 걸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은 북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김정일 정권을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더라는 얘기다. 변명 같기도 하고, 자책 같기도 하다.

    94년 김일성 사후(死後),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가 잇따르면서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한동안 무성했다. 북한 권부의 핵심에 있었던 황씨조차 그렇게 생각했으니 외부 관찰자들이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시간문제로 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세에 맞서 북한 정권의 내구성(耐久性)을 주장한 '소신'있는 학자가 있었으니 어제 사의를 표명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다. 그는 95년 발표한 저서 '현대 북한의 이해'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을 구체적 실제 속에서 내재적 연관성과 합법칙성을 연구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는 쪽이었고, 그의 진단대로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은 '건재'하고 있다.

    북한을 보는 시각에 따라 대북정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체제 자체의 모순과 결함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정권이 상당 기간 유지될 걸로 본다면 화해와 협력을 통해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기 붕괴가 불가피하다고 본다면 붕괴 과정을 관리하고, 붕괴 이후에 대비하는 쪽으로 대북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 맞다.

    북한이 핵실험 버튼을 누른 순간, 북한 핵문제는 남북한의 손을 떠나 국제정치의 체스 게임이 됐다. 북한이 파키스탄이나 인도의 경우를 믿고 핵실험을 강행했다면 국제정치의 현실에 대한 자기중심적 무지와 몰이해에 다름 아니다. 동북아의 역학 구도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게 돼 있다. 핵실험으로 북한은 핵이라는 암세포를 도려내지 않는 한 암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는 시한부 목숨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다시 제기되고 있는 북한 붕괴론은 10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 환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해 일단 암세포의 전이를 막으면서 북한 정권의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린다는 전략이다. 가만히 둬도 '악역'은 중국이 맡게 돼 있다.

    우리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빛바랜 포용정책의 남은 한 조각 햇볕을 부여잡고 북한의 핵 볼모로 끌려다닐 것인지, 김정일 정권 붕괴 이후를 내다보고 대북정책의 틀을 새로 짤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선택은 이미 내려졌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다.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것이다. 계속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다가는 우리까지 국제사회의 고아로 전락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체스판에서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100년 전 구한말이 그랬고, 60년 전 해방정국이 그랬다.

    포용정책의 상징인 이 장관의 사임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북한을 보는 시각이 북한의 핵실험으로 더 이상 효용성을 갖기 어렵게 됐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결단이라고 믿고 싶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똑같은 과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충고가 생각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