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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일 사설 <"글쟁이는 나라에 위기가 오면 말할 책임이 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중진 시인 정현종씨가 ‘무엇을 바라는가―핵실험에 부쳐’ 라는 시를 냈다. ‘이 손바닥만한 땅에서/ 핵실험을 해/ 7천만의 삶의 터전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는/ 집단이여/ 그대들은/ 자신들이/ 모든 참담의 원천/ 모든 불행의 원천/ 모든 광증의 원천/ 모든 슬픔의 원천이 되는 걸/ 정말 바라는가.’ 북한 핵실험에 대해 대다수 문인, 예술가들이 침묵하는 지금, 한반도에 죽음의 재를 드리운 북핵의 반생명, 반자연, 비인간을 질타한 작품이다.
정씨는 대표적 서정시인답지 않게 현실과 북한을 향해 직설적으로 내지른 데 대해 “나라에 위기가 오면 글쟁이에겐 말할 책임이 있다. 시 쓰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을 저지르는 북한 권력집단에 대해 말하지 않는 문인이란 있을 수 없다.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일은 문학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발언해야 한다”고 했다.
생명을 노래하는 것은 문학의 출발점이자 바탕이며 본분이다. 핵무기는 소중한 생명, 아름다운 자연과 양존할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핵실험한다고/ 어떤 산 하나를 장사 지내니… 이 땅을/ 지구의 화장터/ 물의 빈소/ 공기의 가스실로 만들려는가’ 라고 탄식했다.
시인은 무딘 세상을 깨우는 사람이다.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그래서 ‘25시’의 작가 비르질 게오르규는 “잠수함 속 토끼는 산소가 떨어지면 사람보다 먼저 괴로워하고 죽는다. 문인은 인간 존엄이 무너진 혼탁한 세상에서 ‘잠수함의 토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헤르만 헤세도 “시인은 주변 세계의 양심 상태를 알려 주는 지진계”라고 했다.
정씨는 “이 큰일을 어쩌나 고민하니 시가 절로 터지더라” 며 후배 문인들에게 “침묵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에 어느 좌파가 핵을 찬성할 수 있느냐. 북한의 잘못에 대해 아무 말도 않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문학적·정치적 입장을 떠나 민족의 삶의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 핵 앞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반대하는 것은 이 땅에서 문학 하는 사람과 예술가, 지식인들이 회피할 수 없는 임무이자 운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