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2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핵실험 이틀 만에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이 있은 9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사업 전망과 관련, “지난날처럼 모든 것을 양보하고 북한이 어떤 일을 하든지 다 수용하고 나갈 수는 없게 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통령은 또 ‘유엔 및 관계 당사국 간의 조율된 대응과 한미동맹과 국제공조’를 다짐했었다. 대북 포용정책 전반에 대한 검토는 물론,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 특히 유엔의 제재가 있을 경우 두 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시사한 것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일제히 11일 대통령의 발언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결정에 적극 동참·공조해야 한다던 자신들의 이전 견해를 뒤엎고 대북사업의 계속과 대북 포용정책 지속으로 돌아섰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미국 책임론을 쏟아내기도 했다. 정부는 이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현재 유엔 안보리에서 논의 중인 대북 제재 결의안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자체 해석을 내리고, 결의안 채택과 관계없이 계속 유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또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이날 “북핵 문제는 평화적 해결·정경 분리·한반도 비핵화의 3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포기해선 안 된다. 정부가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에 부분참여 하겠다고 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는 현재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위폐 제작, 돈세탁, 마약 등 불법활동과 관련된 자산이나 금전, 물품, 기술 등의 이전을 금지하는 미국 제안을 중심으로 한 내용의 결의안을 준비 중이다. 유엔헌장 7장 41조(경제 외교제재) 규정을 원용한 것이다. 당초 대북 제재에 신중했던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징벌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함에 따라 결의안 내용에 대부분 합의를 이룬 상태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도 핵실험 당일 “모든 정부가 북한 정권에게 혜택을 주는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집권당이 이틀 만에 당초 방침을 뒤집음으로써 북핵에 대한 최일선의 저지선인 한·미·일 공조체제에서 이탈로 받아들여질 가능성과 함께 유엔 회원국으로서 안보리의 구속력 있는 결정에 반발함으로써 유엔 헌장을 위반했다는 비난을 함께 받을 위험이 커진 것이다. 결국 북핵에 대한 국제공조를 허물고 유엔 제재에 흠집을 내려는 북한의 계략에 한국이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지난 98년 이후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에 지원된 4억5000만 달러, 개성공단을 통해 지원된 2098만 달러 등이 북핵과 미사일에 쓰일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해 왔다. 유엔의 대북 결의에 이 두 사업의 중단을 명시적으로 요구받지 않더라도 정부가 이 사업을 계속하려면 우리 정부와 우리 기업이 이 두 사업을 통해 북한에 지원하는 돈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 주민을 지원한다는 쌀이 군량미가 되는지도 확인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 처지에 이런 증명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게 되면 한국 혼자 북한에게 핵포기를 압박하는 국제사회에 저항하는 꼴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시 한국이 북핵 저지의 국제 논의의 장에서 빠져 나와 제 발로 국제적 고립이란 골짜기에 굴러 떨어져 동맹과 국제사회에서 다 함께 버림받게 되는 셈이다.

    대통령이 이런 상황 앞에서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남북 화해·교류·협력이 큰 진전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북한 핵무기의 당사자가 아닌 구경꾼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라의 중심이 사라진 대한민국의 안위가 풍전등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