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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객원대기자인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내 기대를 ‘추월’해 버렸다. 나는 뒤에 처진 채 그가 가는 뒷모습을 바보처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바보가 되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반 장관보다 한 연대 위인 우리 세대의 외교관 또는 국제정치학도 중에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인재들은 있었다. 그러한 인물들이 헌정 사상 단 한번도 성공한 일이 없는 대통령제하 권력구조에 말려들어가거나, 말려들어가지 못해서 제대로 경륜을 펴 보지 못하고 혹은 정치적 소모품으로 기용됐다 용도 폐기되곤 했다. 나는 버젓하게 통일된 나라에서 저런 인재가 나왔다면 유엔 사무총장도 능히 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다.
반 장관은 그런 내 예상을 뒤엎고 통일도 안 된 분단국가의, 그것도 별나게 성공적이란 소문도 나지 않은 대통령을 모시면서 이번에 유엔 사무총장으로 사실상 확정됐다.
이것은 반 장관 개인과 모국에 큰 영예를 안겨 준 쾌거이다. 분단국가의 외교부 수장이 전 세계 192개국이 가입한 유엔을 관장하는 총책임자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한국현대사의 모든 난관과 책임을 오로지 ‘분단시대’ ‘분단 상황’에 돌리는 억지소리에 마지막 쐐기를 박은 꼴이 됐다.
대한민국은 분단시대에 분단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 세대라는 최단 시일 안에 빈곤한 농업국가에서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대한민국은 분단시대에 분단 상황에도 불구하고 잇단 군부정권의 개발독재체제 아래서도 맨주먹의 시민혁명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제도화된 민주국가를 건설했다. 대한민국은 분단시대에 분단 상황에도 불구하고 냉전체제의 두 우두머리인 미국과 소련조차도 반 토막을 내놓은 올림픽을 1988년 서울에서 역사상 최다 국가가 동서 양 진영에서 참가한 온전한 대회로 확대 복원시켰다.
그리고 이번에 대한민국은 현직 외교부 장관을 분단시대에 분단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단 한 표의 반대도 없이 거의 만장일치로 사무총장에 선출시켜 놓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의 아둔한 기대를 ‘추월’해서….
경제발전, 정치발전, 스포츠외교, 유엔외교 그 어느 분야든 이젠 분단 상황을 핑계 삼아 잘못된 것을 책임 전가하거나 책임 회피할 수 있는 명분이 없어졌다. 북한의 경제 파탄, 천황제적 권력구조와 정치의 중세기화, 국제적 고립과 맹방의 외면 등등은 평양 정권의 실정의 결과일 뿐, 남한의 친북좌파가 구두선처럼 되뇌는 ‘분단 상황의 필연’도 아니요, 그 책임을 더는 ‘분단시대’에 돌릴 수 없게 됐다.
모든 것을 하나의 출발 여건에 환원시키고 그러기 위해 과거를 절대시해서 언제나 그리로 귀의하려는 것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북한 공산주의(?)와 그를 맹종하는 남한 친북 수구 좌파의 고질병이다. 6·25남침 당시 한동안 남한의 거의 전역을 점령한 ‘인공’ 치하에서 제일 먼저 실시한 것이 주민의 ‘출신, 성분’을 가리는 일이었다. 당신은 빈농(貧農) 출신이냐 아니냐, 현재의 성분이 노동자 농민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절대적 기준이고, 지금 무슨 사상을 지니고 어떤 활동을 하느냐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인공 치하에서 ‘반동분자’로 몰리지 않고 발 뻗고 살려면 본인의 의사나 선택과는 상관없는 기본계급(빈농) 출신이라야 하고 막 벌어먹는 노동자 성분이 아니면 안 됐다. 프랑스 유학을 한 저우언라이(周恩來)나 덩샤오핑(鄧小平), 독일 유학을 한 주더(朱德) 같은 중국 지도자가 만일 북한에서 태어났더라면 모조리 ‘반동’으로 몰려 숙청됐을지 모른다.
공산국가가 노동자 농민의 공화국이라는 ‘신화’는 늦어도 1980년대부터는 ‘허구’임이 밝혀졌다. ‘현실’은 오히려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는 공산국가에선 어떤 노조 활동도 허용되지 않고 하물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파업이나 시위는 절대 금압되고 있었다. 폴란드의 자유노조 ‘솔리다르노시치’가 그것을 만천하에 밝히면서 끝내 공산권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됐다. 과거와 이념의 언어에 사로잡혀 있는 한 사람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는 현실에 맹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