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4일 사설 '북한의 핵실험 공갈과 대한민국의 선택'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 외무성은 3일 성명에서 “미국의 반공화국(반북) 고립 압살 책동이 극한점을 넘어서고 있는 정세 아래서 우리는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게 됐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은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시험(핵실험)을 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실험’은 지하 핵실험을 뜻하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 성명에서 핵실험의 시기를 못박지 않았고 미국이 가장 염려하는 핵무기 또는 핵 물자의 이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이번 핵실험 예고는 핵 개발 선언에서 핵 보유 선언을 거치며 이어져 온 북한 핵 시위가 다시 한 계단을 올라선 것이다.

    미국의 제재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난 7월의 미사일 발사시위 역시 미국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고 미국의 대북제재가 철회될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핵 시위의 단계를 높여 이 상황을 어떻게든 뚫어 보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번 핵 실험 예고의 시점이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것도 미국 내에서 대북 정책에 대한 찬반 논의를 불러 일으켜 보겠다는 북한의 계산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공을 미국에 넘겨 미국의 반응을 떠본다는 것이다. 북한이 한국 정부가 미·북 양쪽에 북핵 해결을 위한 ‘포괄적 접근방안’을 제시해 놓은 상황에서 핵 실험 예고를 하고 나선 데서는 한국 주도로는 북핵 문제가 풀릴 수 없다는 북한의 판단이 드러난다.

    북한이 실제 핵 실험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핵개발 선언이 핵보유 선언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핵실험으로 이어졌듯이 한번 내딛기 시작한 협박노선은 노선 변경의 명분을 찾지 못할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미끄러져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기대했던 중국도 지금은 사실상 손을 놓아버린 상태다.

    그러나 그것은 파국으로 가는 길이다. 우선 국제사회가 유엔헌장 7조에 따른 군사적 조치까지 포함해서 지난 7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북 결의안보다 훨씬 강도 높은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북한의 기대와는 반대로 미국의 대북 제재 역시 한층 더 조여들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절절히 실감하는 것은 북한이 핵 실험 공갈로 나선 이 마당에 대한민국이 철저히 국외자가 돼버렸다는 점이다. 남은 북에게 위험천만한 도박을 하지 못하도록 설득할 핫 라인도 없다. 그동안 조건없이 주어졌던 각종 경제적 지원도 북한에 대한 지렛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한국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조종간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정부가 미·북 간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며 둘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동안 미국의 신뢰도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북한의 핵 장난으로 가장 큰 고통과 충격을 받게 되는 당사자이면서도 아무 손도 쓸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정부가 이 순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북한이 실제 핵 실험을 통해 핵 보유국으로 등장해도 지금의 대북 정책을 그대로 고수할 것이냐는 점이다. 북한의 재래식 전력을 대상으로 한 현재까지의 한국의 모든 국방 시나리오는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손에 쥐는 순간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결국 핵을 가진 북을 상대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길은 미국 핵 우산 아래서 북핵의 위협을 무력화시키는 길밖에 없다. 북한이 핵 협박의 수위를 높여가면 갈수록 한·미는 더욱 긴밀한 협조로 이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권 들어 지난 3년 반 동안 한·미 사이는 북핵 위기가 고조될 수록 더욱 벌어지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져 왔다.

    이제 이 정부는 북한이 핵 실험 예고를 통해 핵 공갈의 수위를 또 한 단계 올리겠다는 이 순간에도 미·북 사이의 중재 역할이나 ‘민족끼리’라는 허황된 노선을 고집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북한 핵은 일리가 있다”는 대통령의 북한 핵에 대한 인식과 “북한이 핵 실험을 해도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와는 무관하다”는 대통령의 안보 구상은 계속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남북한 7000만 민족 전체의 운명이 북한 핵의 인질이 될지도 모를 상황을 맞아 전면 재검토에 나서야 할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