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부재'란 단어는 당분간 한나라당의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것 같다. '전시작전통제권' '바다이야기' 등의 중대한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받은 한나라당이 이번엔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두고 전략의 미숙함을 드러냈다.  

    당초 한나라당은 전 후보자가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동기란 점과 그간의 판결성향이 노 대통령의 복심과 일치한다는 점을 인사청문회에서 집중공략하려 했다. 그러나 첫 여성 헌재소장이라는 상징성이 큰 전 후보자에게 공세 수위를 높이는 데는 한나라당으로서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청문회 자체가 평이해질 것이란 전망이 높았다.

    그러나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전 후보자에게 청와대의 '편법지명' 문제를 지적하자 흐름은 급반전됐다. 한나라당도 공격의 초점을 '코드인사'에서 '편법지명'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임명절차에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한나라당은 갈팡질팡했고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못했다.  

    인사청문특위와 당 지도부간에 손발이 맞지 않았다. '편법지명'문제로 6일 청문회가 중단 된 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인사청문특위 여야 간사간 합의를 통해 청와대가 임명동의안을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에서 '헌법재판관 및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으로 수정해 제출하면 청문회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7일 오전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려 했으나 당 지도부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임명절차에 하자가 있는 만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재섭 대표는 "이번 청문회는 반드시 법사위에서 먼저 절차를 거치고 그 다음에 특위에서 절차를 거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고 이재오 최고위원도 "절차가 위법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문회 절차를 중단하고 원점에서부터 다시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강 대표는 절차 부분에 대한 전략을 김형오 원내대표에게 일임했다.

    논란 끝에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에서 '편법지명' 문제를 따지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청문회에 응했다. 그러나 이번엔 특위에서 딴지를 걸었다. 김정훈 의원은 청와대가 제출한 임명동의안의 법적효력을 문제삼았다. 6,7일 이틀 간 계획했던 청문회는 하루 더 연장했다.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야 하는 8일 오전 김형오 원내대표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본회의 표결 처리 의사를 나타냈다. "오늘 오전의 청문회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심판이 날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적 여론의 심판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민주노동당과 접촉을 통해 표계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오후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은 '표결불참'이란 결론을 내렸다. 전 후보자의 임명절차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므로 인정하지 못하겠고, 따라서 임명동의안 표결에도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유기준 대변인은 "표결에 들러리를 서 역사적 오명을 남기지 않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추후 제기될 문제 지적에서 책임을 떠안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표결에 불참하려면 인사청문회는 왜 진행했느냐'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문특위위원 조차 "처음부터 강하게 했어야 했는데 방법이 없다"며 당의 전략부재를 꼬집었고 율사출신의 한 초선의원은 "이제와서 표결을 안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청문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노 대통령의 '편법 지명' 논란이 율사 출신이 아닌 민주당 조순형 의원을 통해 제기된 점도 비판의 도마위에 올랐다. 한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에 율사출신이 그렇게 많은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기준 대변인도 인사청문회 참석을 두고 갈팡질팡한 당의 모습엔 "어쩔 수 없었다"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