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8일 사설 '폭우 속에서 개헌 들먹이는 임채정 국회의장'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임채정 국회의장은 전국이 폭우로 물난리를 겪던 17일 58주년 제헌절 경축사를 빌려 “이른 시일 안에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가칭 ‘헌법연구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며, 민생과 무관한 개헌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제헌절 기념식이야말로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일 호기이기 때문에 폭우든 뭐든 개의치 않겠다는 식의 정략적 판단에 함몰되지 않았다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수장이 국가 차원의 재난 사태에도 아랑곳않고 개헌 얘기를 꺼낼 순 없었을 것이다.

    임 의장은 지난달 19일 취임 제1성으로 “21세기에 맞는 헌법의 내용을 연구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여권에서 가장 강력히 ‘개헌 총대’를 메고 나섰다. 그러자 한나라당이 “현 정권하에서는 어떤 개헌 논의도 하지 않겠다”고 쐐기를 박았는데도 임 의장은 ‘국회의장 자문기구’를 만들어서라도 밀어붙이겠다고 한발 더 내디딘 것이다. 개헌안은 반드시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므로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대통령 4년 중임제만을 도입하는 내용의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고 불을 더 지피는 등 여권이 개헌론을 ‘합창’하는 것은 실현가능성 여부에 앞서 개헌이라는 ‘지렛대’를 통해 현 정치지형을 ‘한나라당 대 반(反)한나라당’ 구도로 재편하기 위한 정략으로 의심사기 십상이다.

    1989년 3당합당이나 1997년 당시 김대중·김종필 총재간 ‘DJP연합’등 대선을 앞둔 정계개편은 개헌을 매개로 국민의 눈을 피한 밀실에서 이뤄진 정파간 합종연횡이었다. 왜 임 의장이 폭우 속에서도 개헌문제를 들고나왔는지도 이같은 ‘역사’가 말해준다.

    우리 역시 개헌의 수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노 정권 임기가 1년7개월밖에 남아 있지 않은 현 시점에서 여권이 시도하는 개헌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치공학적 술책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 그런 유의 ‘정략 개헌’에 동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