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정권의 교과서' 바로 읽어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은 얼마 전 해양경찰들을 초청해 밥을 먹으면서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책을 한 권씩 선물했다. 대통령이 “내 정책을 이해하려면 읽어보라”며 이 책을 나눠준 것이 벌써 여러 차례다. 그래서 이 책은 ‘노무현 정권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이 책의 저자는 대통령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2000년)부터 보좌해온 참모다. 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했고 일본 도쿄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북아 정세를 연구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 국가들이 선택했던 외교·안보노선이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내 정책을 이해하려면 읽어보라”는 대통령 말을 새기며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독후감은 “왜 이 책을 노무현 정권의 교과서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동북아 균형자론’, ‘협력적 자주 국방’ 같은 정부정책을 납득하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정책이 얼마나 위험천만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초강대국이었던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南下)를 막기 위해 중국(청나라)과 일본을 아시아의 협력자로 삼았다. 그런데 영국의 파트너들끼리 싸움이 붙었다. 영국은 둘 중 일본을 지원했고 그것이 승부를 갈랐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중국이 힘에 부치는 균형자 흉내를 내다가 영국으로부터 버림받은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일본이라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패권국 영국과 적대관계에 있던 러시아를 끌어들였다. 아직 약소국에 불과했던 중국이 패권국가의 세력 균형론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다가 더 큰 위험을 자초한 것이다.” 한국이 21세기 초 패권국인 미국과 그 경쟁자로 부상 중인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노릇을 하겠다고 나선 요즘을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미국이 동북아의 두 동맹국 중 한국과는 멀어지고 일본과는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도 닮은꼴이다.

    이 책은 ‘21세기에도 미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점친다. ‘미국은 21세기 과학기술 정보통신문명의 중심에 있다. 무력면에서도 미국은 월등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근거를 제시한다. 여기에 일본의 힘까지 보태진 미·일 동맹은 ‘세계 1~2위의 경제력, 기술력, 국방비가 결합된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다’고 이 책에 써 있다. 현 정권 사람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런 전망에 동의하고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지난 3년간 자주(自主)라는 ‘속 빈 구호’를 앞세워 대미(對美), 대일(對日)관계에 발길질해온 자신들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책은 ‘세계는 패권국가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자기 나라 중심으로 세계가 움직여야 한다고 고집부리면 안된다’고 충고한다. 천동설(天動說)의 환상에서 벗어나 지동설(地動說)시대에 적응하라는 말이다. “자기 중심으로 세계를 보면 기분은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관점으로는 세계 질서를 이해할 수 없고 변화에 대처할 수도 없다.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코리아의 시각에서 패권국의 시각으로 관점을 옮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참모인 저자가 보스에게 직언하고 싶었던 대목이 아니었을까. “한국의 선택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식의 천동설을 이제는 접어달라고 말이다.

    물론 이 책 이곳 저곳에는 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그 시대의 문명 표준을 정하는 패권국가와 동맹을 맺느냐, 그 반대편에 서느냐가 나라의 흥망을 가른다’는 것이다.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는 현 정권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권할 만한 책이다.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며 마음에 드는 구절에만 줄을 치지 말고 책 전체를 정독하며 역사의 교훈을 곱씹어 줄 것을 간절히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