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본인의 글로 인해 발단이 되었고 지금은 이상돈 교수와 홍진표의 논쟁으로 점점 가열되고 있는 소위 ‘386운동권’출신 ‘뉴라이트’그룹에 대한 사상적 의혹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386뉴라이트’그룹은 계간 잡지 『시대정신』을 발행하며 주로 신지호에 의해 대변되었던 일단의 ‘전향’ 그룹을 의미한다. 동일한 용어를 쓰고 있지만 김진홍목사의 뉴라이트전국연합 그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따라서 이들을 뉴라이트전국연합과 구별하기 위하여 “시대정신그룹” 또는 “신지호그룹”이라고 호칭하기로 한다.

    처음 신지호그룹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들이 자신들을 소위 ‘올드라이트’와 구별하면서부터다. 자신들이 마치 자유주의의 기수인양 그리고 도덕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는 양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소위 산업화 세력을 독재적이며 부정부패 세력을 몰아부쳤다. 이에 대해 나는 '신지호의 오만과 편견'이란 글에서 그의 이런 태도를 비판하였다. 그 글에서 나는 “그의 뉴라이트니 올드라이트의 구별 기준이 이념과 정책이 아니라 오로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부정적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수구기득권’세력이란 특정 인물들을 지칭하는 것이지 건전한 보수세력의 이념적 지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과거 보수세력 가운데 부정부패에 연루되었거나 독재자로 낙인이 찍한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죄값을 치렀다.

    또한 신지호 그룹이 자신들은 민주화운동의 경력이 있어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자만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그들의 민주화운동경력이란 것이 알고보면 친북공산혁명운동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들의 도덕성이야말로 치명적이다. 북한 공산정권의 끊임없는 군사적 위협 하에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자유보다는 타율에 의존할 필요성이 컸고 따라서 군사적 권위주의에 의존한 것과 프로레타리아독재를 실현하기 위해 공산혁명에 매진한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이들의 민주화운동은 업적이 아니라 치명적 하자다. 그럼에도 그 이유로 자신들이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들이 아직 반성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 다음 내가 문제 삼은 발언은 바로 안병직 교수의 공산주의도 포용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시대정신그룹이 지향하는 목표라는 것이다. 안병직 교수는 뉴라이트재단 창립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올드라이트는 권위주의와 산업화세력에 연원을 두고 있어 자유주의 개혁을 하려면 자기부정을 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뉴라이트는 독재, 권위주의, 부정부패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 출신 인사들이 핵심이며,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까지도 논의가 허용되는 다양한 사회를 추구한다”고 강조하였다. 바로 신지호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산주의도 허용하는 다양한 사회”를 추구한다는 고백이 그들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의심할 만한 대목이었다.
    이들이 한 때 공산주의에 빠졌던 그리고 80-90년대의 친북공산혁명에 목숨을 걸었던 세력이란 것을 감안한다면 이 발언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모두 잘 아는 바이지만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는 서로 맞지 않는다. 공존이 불가능하다. 공산주의는 근본적으로 독재를 지향한다. 바로 무산계급의 독재를 실시하는 것이 이들의 정치적 목표다. 이런 공산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다. 독재세력이 자유를 논하는 것만큼 더 위선적인 것은 없다. 그런데 이들이 공산주의도 허용하자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자유주의의 기수로서 자유주의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니 우리가 이들의 자유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시대정신그룹에 속하는 홍진표가 또 다시 “사상통제, 반공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반공과 반공주의는 다르다”고 항변한다. 과연 그러한가? 홍진표는 이상돈 교수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이 교수는 뉴라이트가 더 이상 반공이 필요없다고 주장한다고 강조하지만, 뉴라이트는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반공’ 그 자체를 문제 삼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뉴라이트는 사상의 자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심 등을 덮어놓고 좌파라고 공격하여 결과적으로 엄청난 좌파들을 양산해내는, 그래서 항상 가공의 '적화 위험'에 떨어야 하는 ‘반공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이 교수의 구분법대로 하자면, 우파는 항상 소수파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60-70년대 철통같던 반공주의는 80년대 대학가 좌파이념의 엄청난 폭발로 쉽게 무너져버렸고, 더구나 사상통제에 대한 반발심이 지식층의 좌경화를 촉진해버렸으니, 반공주의 비판은 막연한 신념의 차원이 아닌 무척 가까운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다. 이 교수가 뉴라이트가 좌파라고 규정하는 방식이야말로 전형적인 반공주의의 모습이다.”

    ‘반공’과 ‘반공주의’를 구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일단 논의하지 말자. 그러나 반공주의로 인해 “엄청난 좌파들을 양산”해냈다는 주장이나 “항상 가공의 ‘적화 위험’에 떨어야 했다든가 또는 ”철통같던 반공주의는 80년대 대학가 좌파이념의 엄청난 폭발로 쉽게 무너져 버렸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논의할 가치가 있다. 이런 가설이 어느 정도 사회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지 의문이 일기 때문이다.

    한국의 좌파 또는 공산주의자는 자생적인 측면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북한의 공산군사독재정권의 대남전략에 의해 양성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북한의 공산정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국에 지금과 같은 규모의 공산혁명세력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대정신』을 창간한 사람 역시 김일성을 여러 차례 만난 경력이 있으니 이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80-90년대의 학생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한 것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은 그 당시에 학생운동을 주도하였던 사람들의 증언이 상당수 공개되어 있어 그 시대 상황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 공산주의자가 따라서 좌파이념이 엄청나게 폭발하여 반공주의가 무너졌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가 없다.

    이런 현상은 반공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북한 공산군사독재정권의 대남전략과 어리석은 학생들의 반정부 운동이 결합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리고 반공주의 때문에 항상 가공의 적화위험에 떨었다는 것도 거짓이다. 지금 비교적 소상히 드러났지만 그 당시 좌파적 사상을 선전한 사람들이 자생적이든 북한과 연계되었던 반대한민국적 활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반역의 죄를 범하면서 심리적 압박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들 반역세력을 당연히 처벌되어야 하고 이들은 이 처벌의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다. 이것을 “가공의 적화위험”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홍진표는 또한 김정일 정권은 마피아이기 때문이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홍진표는 이상돈 교수의 발언에 반박하면서 “여하튼 필자는 김정일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마피아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홍진표는 다른 글에서 “일각에서는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그 필요성을 말하지만 북한 정권은 이미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마피아와 유사한 범죄집단일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홍진표는 또한 “실제로 서구나 일본의 좌파들 중에 김정일체제에 대해 ‘사회주의의 일탈’이라고 보면서 반 김정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도 발언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시대정신그룹이 김정일에 반대하는 이유도 역시 그가 정통성 사회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

    홍진표가 김정일이 마피아라고 말 한 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것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마치 김정일을 대표하는 속성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설사 김정일이 마피아라고 하더라도 그가 지독한 공산주의자이며 군사독재자인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북한 노동당의 수괴이며 또한 선군정치를 앞세운 군사독재자다. 노동당은 공산당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마피아이니 그를 공산주의자로 비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한국의 반공주의가 문제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속단이라고 보고 싶다.

    홍진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반공주의는 지난날 결국 사상통제로 흘러 많은 지식인의 반발을 불러왔고, 우파 지성의 선도성과 헤게모니를 약화시켰다. 근래 남북관계 진전을 틈타 강정구 교수류의 친북 좌파 주장이 양지로 나오게 되자 ‘좌경 운동권이라는 말은 군사정권의 조작’이라고 여기던 국민이 그 본질을 알게 되었다. 개방의 효과다.”

    물론 반공주의가 사상통제로 이어졌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북한이라는 사상최악의 공산독재정권의 안보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국가건설에 매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식인들의 반발을 불러온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오늘 날의 현상을 지켜보면서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소위 지식인의 반발로 인식되던 활동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북한과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송두율도 강정구도 그리고 지금 북한의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수 많은 소위 지식인들의 행태는 이들이 지식인이 아니라 단지 북한의 대남전략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행동대원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탕하다. 이들의 반역활동을 묵과할 수는 없다. 이들이 반공주의의 결과로 탄생하였다고 보기도 힘들며 또한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반역행위를 용서할 수도 없다.

    홍진표의 말대로 개방의 효과로 강정구류의 주장이 군사정권의 조작이 아니란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반공주의 자체를 폐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북한 공산군사독재정권의 대남전략이 먹혀들고 있는 현실에서 폐기하여야 할 이유도 없다. 여중생사망사건을 친북반미활동으로 전개한 친북세력의 전략을 보거나 평택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친북세력의 반국가활동을 보면 우리 사회는 북한이 존재하는 한 반공주의를 버리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지금은 대한민국의 정부 자체가 친북세력으로 장악되어 있는 상황에서 반공주의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사상적 기반이라고 봐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시대정신그룹 또는 신지호그룹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던지는 이유는 이들이 공산주의도 허용하는 다양한 사회를 추구한다든가 북한의 대남전략에 의해 대한민국의 안보가 위험에 빠진 이 때에 반공주의를 폐기하자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한 때 주사파로서 친북공산혁명에 전념한 세력이 주축이어서 이들의 이런 발언이 우리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한 대한민국을 북한의 안보위협 하에서도 이만큼 건설하는 데 성공한 소위 산업화세력을 올드라이트라고 명명하여 독재세력이니 부정부패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신들이 과거 한 때 공산혁명을 주장하였다면서 지금은 자유주의의 기수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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