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권력-기업-매스컴의 3각 결탁

    6월 13일 토고와의 월드컵 1차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은 온통 월드컵 신드롬, 월드컵 몸살을 앓고 있다. 일명 월드컵 증후군이다. 전국의 주요 길거리는 축구응원으로 교통이 마비가 되고, 길거리가 쓰레기더미에 넘치고, 방송과 신문기사는 온통 월드컵 이야기로 장식되면서. 다른 주요 국가적 뉴스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가 마치 히로뽕을 맞은 아편중독자처럼 몸살을 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전 월드컵의 4강에 오른 이후 갈수록 월드컵의 광풍과 그 후유증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월드컵의 광풍은 어떻게 해서 다시 도래한 것일까. 정치권력, 대기업과 매스컴이 이해관계의 교묘한 일치로 인한 3각 결탁으로 월드컵 광풍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4년전 붉은 악마군단이 ‘아! 대한민국’을 열창하였고, 연이어 미군장갑차에 의해 두 여중생의 압사사건이 발생하자 반미친북세력은 이를 호기로 삼아서 촛불시위를 통해서 최초로 대규모의 반미운동을 통한 미군철수운동을 촉발시키는 한편, 여세를 몰아 반미무드에 교묘하게 편승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일궈내어 톡톡히 재미를 본 전력이 있다. 그러므로 열린우리당의 핵심부에서는 이번 월드컵에 거는 정치적 기대가 남다르게 클 수밖에 없다. 

    집권당 열린우리당은 권력(power)의 유지를 위해서, 또 4년전의 영광의 연승전(連戰勝)을 2007년 대선에서 재현하기 위해서라도, 월드컵에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총력을 걸고 진두지휘하고 있다. 5.31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은 월드컵 성적이 좋으면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오르지나 않을까 고대하는 심리가 다분하다. 또 월드컵 와중에서 보수우익단체들의 김대중 방북에 대한 맹렬한 반대와 6.15선언 폐기운동 등은 마치 태풍속의 찻잔의 흔들림처럼 조용히 묻힐 것이다. 이 점을 노려서 친북좌파의 총사령관격인 김대중은 무사히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연방제 추진 등 남북관계 돌파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기업들은 떼돈(big money)을 벌기 위해서, 자신들의 상품을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대중들의 사행 심리를 한껏 자극하고 있다. 이미 대기업들이 출연해 길거리응원까지 지원했다고 한다. 거리마다 상점 주변에서는 경찰의 방치 하에 크고 작은 불법광고판이 버젓이 휘날리면서 교통장애, 보행장애, 시각장애를 유발하고 있다.

    매스컴은 권력과 대기업의 광고 지원사격을 톡톡히 받으면서 월드컵 열풍을 부추기는 대리인, 하수인, 나팔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KBS, MBC, SBS 방송3사가 총출동하여 경쟁적으로 월드컵을 방송하고 있다. 프랑스전을 앞둔 6월 17일~18일 새벽 6시까지 방송 3사의 월드컵 관련 방송시간을 살펴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MBC와 SBS의 경우, 약 12~13시간(프랑스전 포함)을 할애하고 있다. 그래도 KBS는 4시간을 방영한다. 스포츠전문방송사도 아닌데, 한국의 주요 방송사들이 심하게 말해서 24시간 월드컵을 방송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3사가 중복하여 경쟁적으로 다른 나라의 월드컵을 방영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외화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것은 국민들의 자유로운 방송 선택권마저도 박탈한 것으로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언론매체의 유례없는 전횡이자 폭거이다.

    II. 월드컵 폐인군의 등장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등장했던 일명 ‘월드컵 폐인’이 다시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월드컵 이벤트에서 독일행 행운을 잡은 사람들은 군 입대를 연기하는가 하면 학교를 휴학하고 있다. 심지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까지 나오고 있다. IMF사태 이후 가뜩이나 빈곤한 수입에 호주머니를 통통 털어서 생업을 포기하고 독일행 비행기를 탄 사람들이 많다. 전문의들은 폐인 신드롬에 대해 “뭔가에 집착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그것에 집착해서 성과를 이뤄내야 괜찮아지는 증상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월드컵의 긍정적 효과는 분명히 있다. 국민을 하나로 통합, 결속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서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물결로 휩쓴 길거리 응원은 응원 자체의 재미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대부분 사람들은 스포츠를 통해 애국심을 끌어냈고 이것은 길거리 응원을 너와 내가 아닌 ‘우리’로 응집시켰다. 방송에서는 길거리 응원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길거리 응원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있다고 방영하니, 관광수업도 짭짤하게 올릴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인들의 길거리 응원이 “너무 지나치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방송사들은 굳이 외면하면서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월드컵의 부작용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한다. 월드컵이 끝났을 때의 허무함은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마치 히로뽕을 투여한 마약 중독환자가 마약이 끊어짐으로써 금단효과가 나타나서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와 무엇이 다른가. 들뜨고 가뜩이나 혈압이 오른 흥분된 상태에서 일상적 삶 속으로 신속하게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빈 털털이가 된 은행 통장과 잃어버린 직장, 방치된 학업성적과 내 팽개친 직장의 작업량과 스케줄은 어떻게 만회할 것인가. 찬 땅바닥에서 설치다가 도진 무릎관절과 허리디스크는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도대체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16강에 진출했다고 세상은 어떻게 달라진단 말인가. 월드컵 승전보가 노무현 대통령의 친북좌편향 정치철학이나 대한민국에 대한 자학사관의 역사인식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김정일과 그의 공산당 간부 측근들이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에 감읍해서 대남공작을 중단하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 불바다” 협박조의 내정간섭에 대해서 정중하게 사과하고, 개혁 개방 조치를 실시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김정일이 핵무장을 포기하고 미사일 발사라도 연기한다는 말인가. 월드컵 승전보가 10년동안이나 1만여달러에서 지체된 국민소득이 2만달러로 올라가는 성장엔진의 역할이라도 한단 말인가. 한반도는 분단된 채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으리라!

    III. 남미형 축구정치의 시동?

    월드컵 광풍으로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이런 병적 분위기를 정치권력과 기업체, 매스컴이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스포츠는 섹스, 스크린과 더불어 정치권력자의 3S정책이라고 한다. 1930년대 독일의 나치 독재자 히틀러는 권력을 잡은 뒤에 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하여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유치하여 게르만민족주의에 불을 질렀으며 급기야 3년 뒤에는 2차대전을 일으켜서 결과적으로 독일을 패망시켰다. 2차대전이후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이나 동독이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소비재 산업에 보다 스포츠에 투자한 비용은 막대하다. 이렇게 공산권 국가들은 스포츠의 우수한 성적을 통해서 강압적으로 통제된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자국의 민족주의 열풍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장기 독재정권의 체제비용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스포츠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소련소비에트공화국이나 동독은 90년대초 붕괴되었다. 

    '축구전쟁의 역사'의 저자인 영국 저널리스트 사이먼 쿠퍼는 축구를 아예 국가 간 대리전쟁이라고 규정한다. 사실 현대 축구는 단순한 시합이 아니라 국민 심리적 차원에서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착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국력의 척도로 간주하고 있으며 또 축구에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있기에, 축구를 국가를 대리해서 싸우는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남미에서는 정치가든 국민이든 축구에 몰두하다 보니까 한때 축구로 인해 전쟁까지 일어난 경우가 있었다. 1969년 7월 멕시코 월드컵 예선전에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시합이 전쟁으로까지 발전했다. 

    이제 정치가들은 축구성적표가 다음 선거 집권에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축구에 관심을 집중하고 축구에 투자를 하게 된다. 경제성장에 대한 비전 제시보다는 축구 성적표가 좋아야 국민들로부터 정치 잘 한다는 손익계산서를 받는다. 여기에 기업과 매스컴이 가세하여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축구에 매달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남미는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축구강국이 되었지만 선진국으로 향하기에는 국민소득과 민도에서 아직 멀고도 험하다. 남미에서는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으며, 축구가 현실에서 누적된 고통을 잊는 유일한 민중의 오락거리가 되고 말았다.

    IV. 선택의 기로: 축구 강국이냐, 선진국이냐

    한국의 정치가들도 스포츠를 매개로 하여 권력놀이를 하려는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88올림픽을 유치한 이후부터 월드컵 유치로 4강 신화에 이르기까지 스포츠는 한국정치에서 중요한 변수로 자리매김했다. 4년전 정몽준 축구협회장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안고서 대선에 출마하여 사퇴한 해프닝이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후부터 한국은 본격적으로 ‘남미형 축구정치시대’가 개막되었다고 보아야한다. 축구에 매료된 대중심리를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민중의 심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정치현상이 이제 한국에 상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헐리웃 영화, '글래디에터'에서 죽고 죽이는 유혈이 낭자한 검투사 시합을 구경하면서 빵 한 두 조각씩을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소일하는 로마 민중들의 흥분된 모습처럼,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넋이 나간 채 식당에서든 안방에서든 목욕탕에서든 심지어 학교에서든 TV 축구경기에 하루 종일 소일하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더구나 한국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강대국을 무찌르고 개선했을 때, '축구성적=국력'이라는 착시현상이 연일 방송되는 매스컴의 과장, 과잉 보도에 의해서 광범하게 한국사회에 유포되면서 과잉 분출된 민족주의 열풍이 재현된다면 그 방향은 쓰나미의 태풍처럼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일 것이 우려된다. 

    마치 4년전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른 주한미군철수운동처럼 “가자 평양으로,” “6.15공동선언에 기초한 남북연방제 지지,” “김정일 만세,” 등의 엉뚱한 구호가 한국사회를 휘몰아 칠 수도 있다. 또 노 대통령이 자주 언급한 ‘자주국방’, ‘동북아 균형자론’의 비현실적인 레토릭이 다시 회생되거나, 아니면 북한 핵문제 해결때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적 입장을 천명하고 주변 국가, 특히 일본이나 미국 등 우방국가들과 외교적 마찰이 심해지면서 그들과의 정상적 관계가 심히 훼손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우리 대한민국도 이제 선진국으로의 돌입 노력은 포기된 채, '남미형 축구정치시대'가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린 것이 아닌가. 과연 대한민국은 축구강국으로 가느냐. 선진국으로 가느냐. 그 주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정치지도층과 매스컴의 깊은 성찰을 촉구한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