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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5·31 지방선거 결과는 한마디로 세상이 온통 왼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자만한 집권세력, 그리고 그런 좌파 대세에 잔뜩 주눅들었던 한나라당을 동시에 겁 준 쓰나미였다.
그동안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대북(對北) 외교 경제 교육 등 모든 부문에서 좌파 시책들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학계 매스컴 문화계 등 지식인 사회에서도 단연 좌파가 주도권을 잡아 좌파 물결에 영합하지 않고서는 한자리 끼어드는 것조차 수월치 않았다. 심지어는 반대당(opposition)이라는 한나라당의 일부 정치인들까지 “우리도 보수우파 아닌 나도 밤나무”라며 어설픈 ‘좌파 벤치마킹’을 하는 코미디를 연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3년 반 만에 이런 좌파 대세가 극적으로 뒤집어졌다. 수준 낮은 좌파를 직접 겪어보고 검증한 절대다수 국민에 의해서다. 그러나 5·31 민의(民意)의 그런 심판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겉으로만 “겸허한 자세로…” 어쩌고 할 뿐, “그러니까 어떻게 달라지겠다”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고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은 “부동산, 세금 정책 수정한다”와 “정책 변경 있을 수 없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은 ‘정책기조의 일관성’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김근태씨는 이것을 “좌·우를 아우르겠다”는 표현으로 얼버무렸지만 결국은 좌파 근본주의가 집권측의 여전한 실세(實勢)임을 드러낸 것이다. 영국 노동당처럼 좌파실험을 폐기하고서 ‘새로운 노동당(New Labour)’을 공식 선언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실패했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다시 한번’ 좌파 원칙에 연연해하는 식이다. “좌·우를 아우르겠다”는 것은 결국 5·31 민심 우박을 피해 가려는 일시적인 카멜레온 작전일 수 있다.
이런 이중적인 정체성을 한 묶음으로 포장하려는 듯, 최근 범여권(汎與圈) 언저리에선 ‘중도’ ‘중도개혁’ ‘중도통합’ 같은 새로운 정치 프로젝트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중도(centrism)’는 물론 “양자택일을 하지 않겠다” “이쪽 저쪽을 50%씩 반죽하겠다” “양쪽의 중간 지점에 서겠다”는 뜻으로, 주로 유럽의 다당제 정치지형에서 발생해 온 위상이다.
그러나 “태극기냐, 평택의 한반도기(旗)냐?”의 첨예한 결전장에서는 제3의 ‘중도’란 있을 수 없으며, 범여권의 이른바 ‘실용파’가 설령 ‘중도통합’을 추진한다고 해도 근본주의 좌파가 그것을 위해 ‘평택의 한반도기’를 선선히 거둘 리는 절대로 없다. 역(逆)으로 그들이 오히려 ‘중도’를 새로운 숙주(宿主)로 이용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한나라당 역시 정체성 흐리기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5·31 국민심판 후에도 지난 3년 반처럼 ‘좌파 콤플렉스’에 계속 빠져 있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반대당으로서의 뚜렷한 이념적 대척점(對蹠點)에 서겠다는 것인지가 도무지 분명치 않은 것이다. 평택에서 군인들이 얻어터졌을 때, 열린우리당 의원의 ‘범대위’ 지지 출연(出演)은 있었어도, 그 반대쪽에 한나라당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점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결국, ‘좌파 세상’을 주도한 열린우리당, ‘좌파 세상’을 누군가 해체해 주겠거니 체념한 듯한 한나라당 일부, ‘좌파 세상’에 휩쓸린 지식인 사회가 모조리 머쓱해진 가운데 엉뚱하게 ‘중도’가 고개를 내민 사태다. 여야 정치권의 이런 모습은 이번에 화끈한 ‘좌파 배척’을 선명하게 표출한 국민의 의사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 압도적인 의사는 어중간한 절충론적 ‘중도’도 허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정치권은 이제 또다시 얼버무리고 거짓말하고 위장하지 말고 정직하게 자기 정체성을 추슬러 드러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민주화=좌파혁명=김정일폭압지지’라는 일부의 일탈을 배격하고, 대한민국을 부끄러운 역사로만 보지 않는 진정한 진보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어쭙잖게 좌파유행을 ‘커닝’하기보다는, 자유주의 보수주의의 제자리를 제대로 살리고 고품질화(化)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을 현혹시키려는 얄팍한 눈속임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