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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논설주간이 쓴 '국민과 따로 놀면 국민 근심 모르는 법'이라는 제목의 강천석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맹자(孟子)’ 속의 맹자 목소리는 쩌렁쩌렁하다. 거침이 없고 겁냄이 없고 굽힘이 없다. 임금을 상대로도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제(齊)의 선왕(宣王)이 물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弑害)해도 됩니까?” 맹자가 답했다. “인(仁)을 해치는 자는 흉포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는 잔학해 임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를 죽이는 것은 처벌이지 시해가 아닙니다.” 2300년 전에 이런 문답이 오간 것이다. 천지에 가득한 바르고 넓고 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슴 가득 품고 있다는 자부심이 없고선 감히 입 밖에도 낼 수 없는 말이다.다산 정약용은 열일곱 살 적 아버지 임지(任地)인 화순(和順)에서 40일 동안 ‘맹자’에 폭 빠졌다. 그러고선 쉰셋 나이에 유배지 강진(康津)에서 ‘맹자요의(孟子要義)’ 9권을 지었다. 다산이 맹자를 36년 동안이나 가슴에 담가 우리고 우렸던 것은 ‘막히고 굽은 세상을 뚫고 펴겠다’는 데 세월을 건너뛰어 맹자와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그 맹자를 찾아가 5·31 지방선거의 여당 패인과 책임에 대해 물었다. 역시 서릿발 같았다.
―선거 결과를 놓고 대통령과 당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며 친구에게 처자식을 부탁했는데 돌아와 보니 굶고 있었다면 그런 친구는 버려야 한다. 감옥 관리가 허술했다면, 옥리(獄吏)를 잘라야 한다. 그 이야기 내내 고개를 주억거리던 임금이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느냐고 했더니 갑자기 ‘두리번거리며 화제를 딴 데로 돌려 버리더군’(王顧左右而言他).”
―국민 마음을 그렇게 모를 수 있을까요.
“임금이 백성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으면(憂民之憂者) 백성도 임금의 근심을 자기네 근심으로 삼는 법이야(民亦憂其憂). 서로 따로 놀았다는 이야기야.”
―불경기에 무거운 세금이 여당의 패인이라는데….
“2300년 전에도 다섯 가지만 잘하면 나라가 평안하다 했어. 첫째가 인사(人事)이고 둘째부터 다섯째까지는 다 세금을 가볍게 하라는 것이야. 하물며 요즘 세상에야.”
―그런데도 건설부장관이나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세금을 건드리면 정부가 무덤을 파게 된다’고 합니다.
“임금 좌우에 있는 자들이 다들 세금 곳간을 키울 궁리만 하고 있는걸 보면 ‘요즘의 신하라는 자들은 모두 옛날의 도적과 한가지야(今之所謂良臣 古之所謂民賊也)’.”
―그래도 여당은 다음에라도 세금을 가볍게 하자고 하니 낫지 않습니까.
“어떤 닭 도둑이 매일 한 마리씩 이웃집 닭을 훔쳤어. 크게 나무랐더니 그럼 지금부터는 한 달에 한 마리씩만 훔치다가 내년에는 완전히 그만두겠다고 하더라고. 다음에 어쩌고 하는 건 이 닭 도둑보다 나을 게 없어.”
―일자리가 없어 노는 사람이 많은 것도 걱정입니다.
“‘일자리가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법이야(無恒産者 無恒心)’ ‘죄를 저지르도록 만들어 놓고선 죄 지었다고 처벌하는 건 나라가 그물을 쳐놓고 백성을 잡는 거나 같은 처사야(及陷乎罪 然後從而刑之 是罔民也)’.”
―이 마당에 청와대 혁신수석은 ‘대통령께서 살아오신 인생 자체가 혁신’이라 하고 국정홍보처장은 ‘정부는 미래지향적인데 언론이 늘 발을 건다’고 합니다.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애쓰지 않았다면 그래도 그 죄는 봐줄 수 있어. 그러나 임금 잘못을 알면서도 아첨만 했다면 그 죄는 매우 커(長君之惡 其罪小 逢君之惡 其罪大).”
―어찌하여 이 정부엔 이런 사람들만 모였을까요?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옷 맞출 때나 음식 주문할 때 재단사와 요리사의 지연과 학연을 따지나, 솜씨만 보지. 그런데 그보다 몇 십 배 중요한 나라의 인사에선 연줄을 따지니 그 모양이라고.”
―나라를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까요.
“옥(玉)에다 조각 새기는 전문가를 불러 놓고선 임금이 이래라 저래라 하면, 임금 눈높이에 맞는 걸 만들고 말아. 경제전문가를 자리에 앉혔으면 그 사람에게 맡겨야지, 내 경제관에 맞추라고 해선 안돼.
‘윗사람이란 자기 말 받들 사람은 가까이하면서도 자기가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은 멀리하기 쉽지(好臣其所敎 而不好臣其所受敎)’ ‘큰 일을 도모하려면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신하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故將大有爲之君 必有所不召之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