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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꼴 천 총통과 노 대통령

입력 2006-06-10 10:03 | 수정 2006-06-10 12:03

조선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박승준 중국전문기자가 쓴 '동아시아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즘 부패 스캔들로 하야 위기에 몰린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타이완 정치사에 기록될 사람이다. 1947년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의 53년 집권을 무너뜨리고 당선된 첫 야당 출신 총통이기 때문이다. 2000년 3월 당선된 직후 그를 만나 인터뷰한 일이 있다. 타이베이 시내 뒷골목 허름한 건물에 있는 선거운동 사무실에서였다. 천 당선자는 대학생 자원봉사 선거운동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당선자는 뭔가 목에 힘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던 국민당 사람들과는 달리,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이야기하는 ‘탈권위’의 소탈한 몸가짐이었다. 한국의 두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은 지한파(知韓派)라 우리 정치 사정도 잘 알고 있었다.

“한국 국민들은 3년 전 야당 출신의 진다중(金大中) 선생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오늘 타이완 인민들은 야당 출신의 나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유세 다니느라 햇볕에 검게 그을린 50세의 젊은 얼굴에는 건강미가 넘치고 있었다. 그런 천 총통이 요즘 하야 위기로 몰리고 있으니 세상은 참으로 두고 볼 일이다. 타이완 언론들이 폭로 중인 총통 주변인물들의 부패는 네 갈래다. 퍼스트 레이디 우수전(吳淑珍) 여사, 사위 자오젠밍(趙建銘), 그리고 비서실 직원, 총통이 직접 고른 관리 등의 인물들이 각각 여러 건의 거액 뇌물수수와 이권 챙기기, 공직 인사에 개입했다고 한다. 천 총통은 2004년 재선을 위한 선거유세 과정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이 점차 총통 측근들이 꾸민 자작극인 것으로 기울어지는 곤경에도 빠져 있다.

천 총통에 대한 요즘 지지율을 보니, 연합보(聯合報)가 지난달 조사한 수치는 17%로 바닥세다. 6년 전 당선 직후 지지율은 79%였다. 틈을 놓칠세라 야당인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주석은 “총통이 하야한다면 후임으로 뤼슈롄(呂秀蓮) 부총통을 지지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천 총통은 누구한테 배웠는지 자신의 이름을 딴 인터넷 신문 ‘아볜전자보(阿扁電子報)’를 통해 “야당은 내가 두 차례나 당선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반격 중이다.

천 총통은 여러모로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사람으로 비교돼왔다. 두 사람 다 종전(終戰) 직후 출생이다. 나이는 노 대통령이 1946년생이니 천 총통보다 네 살 위다. 두 사람 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됐다.

당선 당시 얻은 득표율에도 공통점이 있다. 노 대통령이 48.9%라는 과반수 이하를 얻고 당선됐고, 천 총통 역시 집권 국민당의 롄잔(連戰)과 쑹추위(宋楚瑜) 두 인물이 후보단일화를 못하는 바람에 40%라는 과반수 이하를 득표하고도 당선됐다. 노 대통령이 2003년 4월 60%에 가까운 지지를 받다가, 6월 현재 20.2%(한국갤럽 여론조사)의 낮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점도 천 총통의 경우와 비슷하다. 또 두 사람이 각각 ‘민족 자주’와 ‘대만독립’을 통일안보 정책 기조로 내세웠다가, 안정을 바라는 중산층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첫 전후 세대 출생 통치자인 두 사람은 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을까. 두 사람 다 세상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자신들이 잘못한 건지 아리송하다는 표정들이다. 두 사람의 정치행로는 앞으로 비교정치학의 연구 대상이 되겠지만, 한창 뻗어가던 두 신흥공업국(NICS)의 꿈을 꺾은 지도자로 기록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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