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강규형 명지대 사학과 교수가 쓴 칼럼 '진보정당 왜 진보 못하고 있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돌이켜 보면 5공 초기에는 희한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은 취약한 정통성과 국제사회에서의 멸시 때문에 진보 정당의 인위적인 원내 진입을 계획했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의 환심을 사고 한국이 다원적 민주사회임을 보여 주기 위해 그들은 헌정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희극을 연출했다. 그것은 바로 민주사회당(뒤에 신정사회당이라 개칭)이라는 진보 정당을 급조해 소득수준이 높은 서울시 강남구에서 당선시키는 일이었다. 결국 중선거구제에서 집권 민정당 후보와 민주사회당 후보만 출마시켜 둘 다 당선시켰으니, 그 방책을 입안한 사람의 창의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원내 진출한 사회당은 자생력이 없었기에 곧 무대에서 사라졌고, 그 후 민중당 등이 원내 진출을 시도했으나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했다.

    그러다 민주노동당이 2002년 17대 총선에서 대거 원내 진입에 성공하면서 한국 진보 정당사는 신기원을 맞았다. 이제 한국에서도 자생적 사회주의 정당이 자리를 잡을 때도 됐기에, 식자층은 민노당이 재야 극렬세력이 아니라 제도권으로 진입한 책임 있는 정책 정당으로 변신하길 기대했다. 서유럽 역사를 보더라도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과 같은 대표적인 사회주의 정당의 정강정책은 원래 급진적이었다. 그러나 제도권에 진입할 때부터 그들은 세련화의 길을 갔다. 또 정권을 장악했을 때는 무책임한 급진 야당이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는 책임 있는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합법적 노동자 정당의 대표 격인 영국 노동당은 1924년 역사상 처음으로 집권당이 됐고, 나중에는 아예 온건 진보 정당인 자유당의 지지 기반을 허물고 보수당과 더불어 새로운 양당 체제를 정립시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민노당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수권 정당이 될 희망을 공표했다.

    그러나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민노당은 광역자치단체장은 물론이고 기초단체장 하나 당선시키지 못하는 실패를 맛보았다. 지지율에서도 답보 정도가 아니라 하락을 겪었으며, 집권 열린우리당에서 이탈한 표를 가져오지도 못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민노당은 정책 정당으로 변신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초기의 미성숙한 행태를 탈피하지 못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은 ‘영국병’이라는 사회주의와 수정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결함에서 배태된 문제를 인식하고 20세기 후반부터 철저한 변신을 시도했다. 최근 독일 사민당의 변신 노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민노당은 아직도 20세기 스타일 진보 정당의 한계를 한 치도 못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민노당이 발전하려면 다음 세 가지 사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성장, 경쟁체제, 그리고 세계화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처방전을 제시해야 한다. 결과적 평등, 인위적인 평준, 폐쇄체제에 미래는 없다. 극단적인 경우인 북한 모델은 물론이고 빈곤의 평등이라는 ‘방글라데시 모델’은 이제 한국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 한국의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 대안으로 ‘절제된’ 성장과 ‘공정한’ 경쟁, ‘대책 있는’ 세계화라는 어젠다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외면에서 탈피해야 한다. 항간에 북한문제 거론은 민노총 비판과 더불어 민노당의 금기 사항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것은 반외세 민족 공조를 강조하는 민족해방(NL)계가 다수인 민노당의 한계로 인식돼 민노당 발전에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정통성 인정이다. 작게는 위에 언급한 5공시대의 에피소드에서부터 크게는 조봉암 진보당 당수 사형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지만 크게 봐서는 올바른 진로를 택했다. 급진 진보 진영의 우상인 놈 촘스키 교수마저 한국을 “독자적 경제발전과 평화적 민주화를 이루고, 인터넷 공간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이상적인 모델로 인정하지 않는가.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가 이끌었던 사민당이 콘라트 아데나워가 세운 서독의 정통성을 결코 부정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 진보 정당의 ‘진보’가 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 볼 시간이 왔다. 10%대 득표율의 만년 소수 야당으로 남아 있으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진정한 수권 정당으로 크기 위해서는 치열한 자기반성과 혁신을 거쳐야 할 것 같다. 민노당이 21세기형 ‘지속 가능한 진보 정당’으로 변신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