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3월 23일 임시전당대회를 통해 대표로 선출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27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대표직을 맡아왔다. 같은 기간동안 8번의 당의장이 바뀐 열린우리당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27개월 간 박 대표가 만들어낸 성적표를 살펴보면 '박근혜 바람'의 위력이 얼마 만큼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과연 박근혜가 아닌 누가 이 정도의 성적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박 대표는 선거에 강한 모습을 나타냈다.

    2004년 4·15총선은 박 대표를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당시 탄핵역풍으로 50석도 힘들 것이란 예상을 깨고 박 대표는 121석이란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 당시 전국을 몰아친 박 대표의 유세로 '박풍(朴風)'이란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미니총선'이라 불렸던 2004년 6·5재보선 역시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당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의 경우 부산 경남 제주에서 승리를 거뒀고 기초단체장도 13명, 광역의원 28명으로 압승을 거뒀다. 반면 열린당의 경우 광역단체장 완패, 기초단체장 3명, 광역의원 6명만을 당선시켰다.

    같은해 10월 30일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기초단체장 2곳씩 나눠갖은 반면 열린당은 1곳 승리에 그쳤고 서울, 대구, 경북, 경남, 전남, 강원, 제주 등 7곳에서 실시된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5곳, 민주당이 1곳(전남), 무소속(강원)이 1곳에서 승리했고 열린당은 단 한곳도 이기지 못했다.

    2005년 4·30재보궐 선거 역시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회의원 재선거 6곳중 5곳, 기초단체장 7곳 가운데 5곳을 승리하는 압승을 거뒀고 열린당은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하고 참패했고 그러면서 총선당시 얻은 152석 중 6곳을 잃어버리며 과반의석도 무너졌다.

    4·30재보선에서 압승한 박 대표는 같은해 10월 26일 실시된 4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선 전승을 거두며 리더십 부재란 당내 비판을 '선거리더십'이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며 불식시켰다.

    그리고 2006년 5월31일 '2007년 대선 전초전'이라 불린 지방선거에서 박 대표는 또 한번 기적을 일궈냈고 자신의 대권 경쟁력을 재확인시켰다. 박 대표는 선거초반 25%포인트 가량 뒤지던 대전을 단 열흘만에 뒤집었고 20%포인트 가량 차이나던 제주 역시 막판 '카퍼레이드' 초접전까지 가는 기록을 만들었다. 16개 시·도지사의 경우 당초 예상하던 11곳 승리보다 1곳을 더했고 230개의 기초단체장 역시 완벽에 가까운 승리를 거뒀다.

    이번 선거로 인해 박 대표는 '대권후보 박근혜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을 상당부분 불식시킨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의 이 같은 성적표에 대해 한 당직자는 "이런 성적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대표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