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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국민에 대해 사과하고 “한 번만 봐달라”며 읍소한 것은 우리 당대사(當代史)의 한 희화적인 장면이었다. 그것은 일찍이 자신들의 오류를 한 번도 시인한 적이 없는 자칭 ‘진보’ 세력이 마침내 40년 만에 처음 자신들도 무오류와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아니라,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그리고 잘못을 이미 너무나 많이 저지른 사람들임을 ‘할 수 없이’ 자복한 사태였다. 물론 ‘악어의 눈물’이었지만….
지금까지 자칭 ‘진보’는 권위주의에 저항해 싸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의와 도덕과 진리의 독점적 대변자라는 자기 이미지에 심취해 왔다. 많은 사람들 또한 엄혹했던 그 시절에 감옥을 들락거리며 민주화와 인권과 약자의 권리를 부르짖었던 그들의 희생에 대해 일종의 특례적인 가산점을 주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의 출현은 바로 그런 용기와 희생에 대해 부담감과 미안함을 품고 살았던 동조자(fellow traveller)들과 20대 촛불 시위대가 그동안 진 빚을 갚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권도 그런 성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빚갚음’은 이제 급속히 반환점을 돌고 있다. 8~9년 동안 빚을 갚을 만큼 갚았기 때문에, 그리고 정권을 맡겨 보았더니 그네들의 밑천이 의외로 빨리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칭 ‘진보’는 너무 오만, 무례, 천박, 막가파로 나갔다. 자기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옛날 정권들과 딱히 밀착하지 않은 경우일지라도 일괄 ‘수구 삼각편대’ ‘반(反)민주-반(反)평화-반(反)민족-반(反)개혁’으로 몰아 ‘인민재판’하듯 했다. ‘이해찬 식(式) 막 나가기’ ‘정동영 식 편가르기’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들은 자기들에 맞서는 관점을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으로 여기지 않고, 청소해야 할 쓰레기쯤으로 취급했다. 그들의 방식은 유신-신군부의 배타적 획일주의와 너무나 닮았다. 그래서 그들이 유신-신군부에 왜 그처럼 대들었었는지, 그 명분과 이유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들은 또한 세상의 진화에 대해 너무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그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민주 민족 민중’이라는 고색창연한 도식(圖式)밖에 달리 아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그들은 대학생 때는 시대의 선봉에 섰던 엘리트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영웅’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학문적, 정신적 연마를 하지 않고 화석(化石)으로 퇴화했다. 그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왕년의 화려한 정치범’이라는 자기 이미지에 갇힌 회상(回想)의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로 고착되고 말았다.
그들은 결국 반항자로서는 두드러졌는지 몰라도 국가경영자로서는 무능하다는 평판을, 심지어는 그들의 열렬했던 ‘2002 서포터’들로부터도 받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20대의 일 자리를 늘려 주기는커녕 줄여 버린 정권, 경제를 ‘누구 누구’에 대한 삐뚤어진 앙심으로 다루는 정권, 한미동맹을 ‘관 뚜껑 닫기 전의 시체’로 만들면 중국·일본이 우리를 능멸한다는 것을 모르는 정권, 박정희의 인권탄압을 욕했으면서도 김정일의 몇천 배 더한 인권압살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감싸는 정권, 김정일의 선의를 철석같이 믿다가 하루 아침에 ‘남북 열차운행 노(NO)’로 뒤통수 맞은 정권…. 이런 좌파를 더는 좋아해 줄 수 없다는 것이 근래의 민심인 셈이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때 마치 무슨 ‘탈권(奪權)’의 계기라도 왔다는 듯, 의기양양 좌파정권의 출현에 기여했던 세대와 유권자들도 자신들의 선택이 우리에게 어떤 세상을 가져다 주었는지, 그래서 우리 삶이 얼마큼 나아졌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난 3년 반’에 대한 이런 뼈저린 학습효과를 내재화(內在化) 할 때에라야 오늘의 젊은 세대는 선진한국의 희망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