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논설주간이 쓴 '버릇없는 권력에 화난 국민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열린우리당이 25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전국 246개 광역·기초단체장 가운데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20여곳에 불과하다면서 한나라당의 싹쓸이만은 막아 달라는 것이다. ‘통렬하게 반성한다’고도 하고 ‘엎드려 호소한다’고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전북과 대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의 지지율은 경쟁 정당 후보 지지율의 절반 수준을 맴돌고 있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여당에 대해 마음을 닫아 버린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이 정권을 정리해고해 버리겠다고 벼르는 듯한 분위기다. 집권당이 체면 불구하고 엎드려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통렬하게 반성한다’는 열린우리당의 반성문을 읽어 보면 이 나라 집권세력은 아직도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됐는지를 확실히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왜 국민이 이렇게 집권세력에 대해 분(憤)해하는지, 왜 국민이 이렇게 이 정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는지를 헛짚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그동안 양극화 해소와 정치개혁 완수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왔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반성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이 반성문을 읽고 ‘그래, 열린우리당이 정말 반성하고 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겠는가. 회사에서 직원 한 사람을 내보내는 결정도 쉽게 내리기 힘든 법이다. 그런데 절대 다수 국민이 아직 산 목숨인 정권의 목을 쳐야겠다고 허투루 작정했을 리가 없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가가 부도(不渡)나 IMF 긴급구제금융을 받고 온 사회가 정리해고의 불안에 떨던 때의 이야기다. 한 중소기업인이 이런 난세(亂世)를 헤쳐가는 법을 세 가지로 요약해 들려줬다.

    첫째가 남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그날 일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진짜 경영자는 한 시간 늦게 퇴근하는 사람보다는 한 시간 빨리 출근하는 사람을 눈여겨본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일을 맡겨 실패한 적이 없다는 자신의 경험담도 얘기했다.

    둘째는 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라는 말을 빼놓지 말라는 것이다. 말만 그리 할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느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그것이 마음과 마음 사이의 문턱을 낮추고, 조직의 윤활유(潤滑油) 구실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어느 경영자가 이런 사람을 내치겠느냐는 것이었다.

    셋째는 일이 잘못됐을 때 남보다 먼저 ‘제 탓입니다’ ‘제 잘못입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빈말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느끼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서로의 허물을 감싸주는 분위기 속에서 조직은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눈 밝은 경영자는 남의 탓 하는 사람을 정리해고자 후보 리스트의 맨 앞머리에 올려 놓는다고도 했다. 두고두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국민에게 정리해고 당할 지경이 된 이 정권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담겨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 정권 사람들이 다른 국민보다 먼저 출근해 나라의 진짜 중요한 일을 챙겨왔는가. 공연히 늦게까지 사무실을 오락가락하면서 ‘수도를 옮겨야겠다’ ‘자주의 깃발을 들겠다’ ‘양극화 해소의 근본책을 찾겠다’는 허황된 이야기로 부산만 피워 오지는 않았는가.

    이 정권 사람들은 ‘국민에게 고맙다’는 말도, ‘선배에게 감사한다’는 말도 해 본 적이 없다. 나라를 세우고,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내고, 가난에서 국민을 벗어나게 했던 앞 세대의 노고(勞苦)를 인정한 적도 없다. 오히려 이 나라는 “불의(不義)가 승리하고 기회주의가 득세(得勢)했던 역사”라며 앞서간 세대 전체를 욕보이기 일쑤였다.

    지난 3년 내내 ‘제 탓’ 대신 ‘남의 탓’을 입에 달고 다닌 게 이 정권 사람들이다. 부동산 값이 뛰는 것도 ‘복(福)부인, 기획 부동산업자, 건설업자, 주요 신문의 탓’이라며 ‘나중에 종합부동산세(稅) 한번 내 보시라’고 국민을 희롱하듯 해왔다. 남의 불행을 야박하고 모진 말로 짓이기는 걸 즐기기도 했다. 그런 말투와 심성(心性)이 얼마나 사람들을 분하게 만들고 화나게 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이런 버릇없는 권력을 단단히 손 보아야겠다는 국민의 노여움이 폭발한 것이 이번 사태다. 열린우리당의 반성과 살길 찾기는 바로 여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천석 ·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