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6일 사설 '남북대화 이런 식으로 계속되어야 하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느닷없이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면서 '조건 없는 지원'을 약속한다. 장성급회담에선 서해 북방한계선을 논의할 수 있다는 엉뚱한 제안을 한다. 그러나 장담했던 남북 연결 철도의 시험운행은 속절없이 무산된다. 도대체 이 정부가 어떤 전략을 갖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대북정책이 이렇게 혼선을 빚어도 괜찮은 것인지 걱정스럽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가장 큰 이유는 투명성 결여다. 정상회담과 관련,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기존의 조건을 떼려면 이에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정부는 그런 조치는 없이 '6자회담의 지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 막연한 얘기만 했다. 북한이 핵 문제를 남측과는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변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또 미국과의 합의 없이 남북 간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불쑥 이 카드를 던지고, 총리와 통일부 장관은 'DJ가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느니 '연내 개최가 바람직하다'느니 하며 펌프질을 해대니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의구심만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합의 파기를 되풀이하는 마당에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방북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정부특사냐의 여부를 놓고 정부와 DJ 사이에 엇박자가 났다. DJ가 통일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히자, 청와대 동북아시대 위원장이 나서 '답답하다. 정부로선 별로 기대 안 한다'고 반박했다. 물론 DJ의 그런 입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론 분열만 자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은 DJ의 방북에 큰 기대를 거는 듯한 발언을 하고, 그 밑의 참모는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하니 도대체 이게 제대로 된 정부인가.

    대북 지원 문제도 이제는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해야 한다.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할 때 신발 비누 등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본다. 북한이 약속을 위반했는데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면 북한이 말을 듣겠는가. 그런 협상은 무엇 때문에 하는가. 약속이나 합의를 깨면 반드시 이에 상응한 조치를 한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이런 행태에 익숙해지고, 남쪽에선 북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해져 남북 관계 진전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정부가 대북 지원을 강조해 온 것은 이를 통해 남북 화해협력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대로 있고 우리만 계속 선의(善意)를 내세워 안달을 하니 이런 식으로 뺨을 맞는 것이다.

    이제는 '일방적 북한 감싸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약속 위반엔 이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개별 건당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큰 틀의 상호주의는 도입돼야 한다. 남북 관계에서 전략적 마인드를 가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