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백악관의 지시라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북한인권특사 제이 레프코위츠가 격의없는 자세로 서서 얘기를 나누는 사진을 한국 언론사에 배포한 것은 부시가 북한 인권문제로 한국에 얼마나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가를 웅변으로 설명하는 '사건'이다. 사진의 배포는 북한 인권에 관한 한 레프코위츠의 발언은 부시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심각한 메시지를 한국 정부,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레프코위츠는 북한 인권에 대한 한국의 침묵을 비판하고 검증 없는 북한 지원은 북한 정권만 돕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다.

    북핵에 관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나머지 5개국은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하며, 미국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한과 미국·중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한다는 공동성명에 합의한 것이 겨우 지난해 9월이다. 북핵이 마침내 해결되는가 싶었다. 무엇이 사태를 반전시켰는가. 북한이 제공한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가 의견을 말했다. 그러나 미국 쪽 사정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해가 없다. 미국 책임론은 친북·반미적 편향된 시각으로 치부된다. 그것은 북한 책임론이 반냉전적 '보수꼴통'의 편견으로 폄하되는 것과 대칭을 이룬다. 

    미국 쪽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시의 원초적인 김정일 혐오다. 2002년 여름 부시는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김정일이 싫다. 이 자(this guy)에 대한 내 반감은 본능적(visceral)이다." 부시는 김정일 위원장이 원초적으로 싫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그게 자신의 종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했다. 부시는 그 말을 할 때 허공에 손가락을 휘두르면서 소리를 질렀다. 누구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다. 종교가 개입하면 더욱 그렇다. 부시는 정교분리가 덜된 사람으로 보인다.

    대북 협상파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반짝 떴다가 빛을 잃은 것이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2003년 작전계획5030 수립을 지시한 것도 부시의 북한 인식과 줄이 닿는다고 봐야 한다. 작계5030은 RC-135 정찰기를 북한 영공에 바짝 접근시켜 북한 공군기가 발진하여 귀중한 제트연료를 소진하게 하고, 몇 주일 동안 군사훈련을 실시해 북한인들이 지하벙커로 들어가 식료품과 물을 다 먹어치우게 만들어 혼란에 빠진 군부가 반김정일 거사를 결행하게 유도한다는 영화 같은 내용이다. 북한에 대한 금융압박도 작계5030에 들어있는 북한 금융체계 교란 시나리오의 예행연습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 발언도 부시 정부 대북정책의 기조가 북핵 해결보다는 인권·위폐를 수단으로 한 북한의 정권교체 노선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1기 정부 때로 되돌아간다면 한국은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하거나 외부세력에 의한 북한의 변화에 따르는 혼란과, 심지어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니 '김 위원장, 많은 것 드릴 테니 당신과 내가 조건 없이 만나서 문제를 풀어봅시다'라는 것이 몽골 발언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는 발언이다. 첫째, 가뜩이나 북한 퍼주기로 국론이 갈렸는데 조건 없이 더 주겠다니 "누구 마음대로!"라는 반발이 예상된다. 둘째, 몽골 발언은 사실상 부시에 대한 정면대결의 선언이다. 부시의 북한 압박이 불길하고 견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교적 설득 아닌 민족자주적 대응으로 비칠 정책은 한국을 고립시킬 뿐이다. 특히 한·미 군사훈련에 북한이 불안해하는 것을 동정하는 발언은 북한의 핵개발을 일리 있다고 말한 로스앤젤레스 발언같이 동맹의 한쪽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미국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하다. 미국과 대결하면서 북한에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노 대통령은 먼저 "많은 양보와 조건 없는 지원"의 내용을 밝혀 국내 여론과 미국의 의혹을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