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버려진 이승만 동상’ 이야기를 20일 전 쯤 몇몇 신문 방송이 보도했다. 시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져 파괴된지 46년이 지난 동상들이다. 그 상반신 혹은 머리 부분이 한 가정집의 마당 귀퉁이에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 채 남아 있었다. 차라리 아주 파괴되어 없어지고 말 것이지!

    현대의 의술로도 인생 길어야 백년이다. 청동상이 천년을 간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당사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탑골공원에 서 있다가 1960년 4월26일 하야 성명 직후 끌어내려져 새끼줄에 목매인 채 끌려다니던 이승만 동상도,구 소련이 붕괴될 때 밧줄에 목죄어 끌려내려지던 레닌 동상도 다 권력자의 부질없는 욕망과 아첨배들의 비굴한 욕심이 빚어낸 오욕의 상징일 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특히 정치판에 뛰어들어 크건 작건 공직 또는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임을 각별히 유념해줬으면 좋겠다. 누가 예외일 수 있다고 하겠는가. 특히 걱정스러운 게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싼 여야 후보들과 해당 정당들의 갈수록 험악해지는 싸움이다.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나 한나라당의 오세훈 후보나 남다른 역량을 가진 사회적 국가적 인재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문제는 선거라는 게 멀쩡한 사람 얼굴에 흙탕물 뒤집어씌우는 이전투구로 전락하기 십상이라는 데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깨끗하고 밝게 유지해가는 방법이야 뻔하다. 경쟁 상대의 얼굴을 내 얼굴로 여겨 보호해주면 된다. 이 간단한 이치를 왜 깨닫지 못하는지 그게 답답하다.

    무엇보다 한심한 장면이 ‘서민 논쟁’이다. 지난 5일 SBS가 개최한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오 후보는 서민에 대한 정의를 요구받고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생활 속에서 서글프고 고달프고 그러면 서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강 후보로부터 “귀에 거슬린다”는 빈축을 샀다. 강 후보 측은 오 후보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정말로 태평한, 그러면서도 언쟁을 즐기는 후보들이 아닌가.

    8일의 관훈토론회에서도 두 후보의 ‘서민 경쟁’은 계속됐다. 강 후보는 아직도 언니 집에서 살고 있으며 3,4억원에 이르는 빚이 있노라고 했다. 오 후보는 주식투자에서 손해봤다고 밝혔다. 그래서 자신들도 서민이라는 것인지, 서민의 처지를 잘 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두 후보 모두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이날 본인들이 직접 밝히기로 월 수입이 각각 1500만원 정도에 이르고 강 후보의 경우는 (지난해)연말에 1억원의 배당금도 받았다고 했다. 2002년엔 판사 국회의원 해양수산부 장관 야당 부총재를 지낸 집권당 대통령 후보와, 대법원 판사 중앙선관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 여당 총재를 역임한 야당 후보 사이의 ‘서민 논쟁’이 판세를 뒤흔들더니….

    더 따지자면 이렇다. 남모를 사정이 있긴 했겠지만 항산은커녕 빚만 있다는 판사 법무장관 출신의 변호사, 주식 투자를 잘못해 작년 같이 좋은 장세에서도 손해를 봤다는 국회의원 경력의 변호사가 과연 1000만 서울 시민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개인 살림살이와 시정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너무 ‘서민 자랑’을 하면서 싸움도 안 되는 싸움을 당의 대변인 부대변인들까지 같이 얽혀서 벌이고 있는 모습이 볼썽 사나워서 주의를 환기시킬 겸 하는 말이다.

    그렇게 치고 받으며 안간힘을 쓴 다음에 서울시장이 된들 그게 무슨 영광일 수 있겠는가. 두 후보 함께 아직은 40대이지만 50대는 금방이다. 그러고나면 곧 60대. 이미 시간에 쫓길 나이다. 서울시장이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무엇을,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문제삼아야 할 연령대가 아닌지 모르겠다. 제발 온 세상의 부(富)나 권세로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상대방 얼굴에 흙탕물 끼얹는 일로 낭비하지 말기 바란다. 국민은 언쟁에 능한 서민 후보보다는 선한 후보, 사랑 많은 후보를 원한다고 보는데 이게 혼자만의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