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고문인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쓴 기명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개헌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민주화에는 성공하고도 책임정치의 제도화에는 실패하고 있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대통령이 취임 직후 그 당을 떠나 새롭게 여당을 조직했으니 누구에게 국정의 책임을 물어야 할지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며칠 사학법개정안을 둘러싼 대통령과 여당 간의 갈등은 어느 쪽이 국민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기에 한국의 권력구조는 '대통령 무(無)책임제'라는 진단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한계가 노출된 우리 정치의 틀을 바로잡으려 헌법 개정이 논의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다만 대통령 선거를 불과 19개월여 남겨 놓은 시점에서 촉발되는 개헌 논의는 자칫 당리당략에 치우칠 위험이 적지 않기에 그동안 이를 뒤로 미루자는 신중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국정의 효율성이 저하됨은 물론 민주적 대표성과 책임성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그러한 신중론을 제치고 다시 개헌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지난날 헌정의 전환기마다 토론의 장을 마련해 온 관훈클럽과 한국정치학회, 대화아카데미가 헌법 개정을 주제로 한 모임을 연달아 개최한 게 바로 그러한 신호이다.
1980년 및 87년의 개헌 논의와 달리 이제는 민주 대 반민주란 이념 논쟁은 별다른 의의가 없다. 통일헌법·영토조항·경제조항 등은 심사숙고가 요구되지만 당장 국정의 효율적 운영이나 국민 통합과 직결되는 시급성을 띤 과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개헌 논의의 초점은 역시 권력구조의 문제로, 즉 현행 대통령제를 어떻게.무엇으로 보완.대치하느냐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라스키(H Laski)의 지적대로 미국 대통령은 군주제의 국왕에게 부여된 역할과 내각제의 총리가 맡은 역할을 함께 수행해야 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초당적 역할과 여야 정당 간의 대결에서 여당을 지휘하는 역할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통령제도 비슷한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가의 원수로서 초당적 자세를 강조하다 보면 정당과 연계된 민주적 대표성과 책임성이 약해지고, 반면 다수당의 총수로서 야당과 부닥치다 보면 국민 통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그러기에 이러한 딜레마를 풀기 위한 내각제나 이원제로의 개헌이 고려될 수 있지만 46년 전 장면 정권의 쓰라린 경험이 내각제보다는 대통령제가 정치적 안정을 담보한다는 신화를 고착시킴으로써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게 우리의 개헌 논의가 지닌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정당의 무책임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책임 있는 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의회중심주의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인 게 우리의 국민 정서이다.
그렇다면 한국 민주정치의 제도적 발전을 위한 헌법 개정은 어떤 수순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첫째, 2008년 봄이면 17대 국회와 16대 대통령의 임기가 거의 동시에 끝나므로 이때가 선거의 시기를 일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데는 이미 광범위한 여론이 형성돼 있다. 따라서 17대 대통령의 임기는 4년 단임으로 한다는 단일조항의 개헌으로 이 문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일단락 지을 수 있다.
둘째, 2008년 4월에 선출되는 18대 국회를 개헌국회로 미리 정하고 각 정당과 의원후보들은 각기 그들의 개헌에 대한 입장을 공표해 국민의 선택을 받도록 한다. 48년 5월에 선출한 제헌국회로부터 60년 만에 권력구조를 비롯한 제반사항에 대한 신중하고 철저한 검토와 개정작업을 책임 있게 완수할 개헌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18대 국회가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에 의해 권력구조를 포함한 포괄적 개헌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나면 2012년부터 우리는 새로이 보완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로 하여 선진화된 민주국가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단계의 개헌작업안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전향적 결단을 여야 모두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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