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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에 넋잃고 노정권 심판않으면…

입력 2006-04-21 15:07 | 수정 2006-04-21 22:37
문화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 <'기호1번' 열린우리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보라색 강금실'에 대해 재미 삼아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가 보라색을 휘두르고 나온 데엔 강금실 유행어대로 “호호호∼코미디야. 코미디”라며 넘어갈 수 없는 ‘정치적 무엇’이 깊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왜 “난 능력있고 똑똑해요. 서울시장 살림 자신있어요. ∼호호호”라고 당당히 치고 나오지 않았을까. 강금실은 이 나라 부모들이 가난 때문에 오빠들만 학교 보내고 딸은 남의 집살이나 공장으로 보내야 했던 시절, 최고의 수재 여학생들이 다닌 경기여고를 졸업했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판사를 지내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재원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법무장관에 오른 것은 굴러들어온 운(運)이라고 치자. 그런 재원이 ‘능력’을 들고 나와 떳떳하게 서울시장 자격 시험을 치르겠다고 나온 것이 아니라, 시청 지하철역에 내려 보라색 스카프를 휘감고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이벤트를 연출하며 “정책은 다음에 말할게요”라고 했다. 왜냐고 ? 똑똑하지 않을 리 없는 강금실은 국민의 수준을 꿰뚫어보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싫어하는 우리 국민, 특히 20대에서부터 40대에 이르는 유권자의 정서적 트렌드를 타고 싶은 것이다. 만약 강금실이 자신의 무기인 학벌과 경력을 내세우며 도전을 선언했다면 ‘잘났어 정말’이라는 거부감 때문에 초반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를 골병들게 하고, 결과적으로 나라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국민의 ‘이미지 중독증’이다.

무엇이든 새 것을 찾고, 그것도 금세 싫증이 나면 또 새 것을 찾는 감각적 트렌드, 금방 산 휴대전화를 구닥다리라고 또 바꾸고 전화 벨 소리를 하루에도 몇차례 바꿀 정도로 변덕스러운 선택 방식이 나라를 지키고 융성하게 만들며 먹고 사는 문제를 결정해야 할 정치인을 선택하는 데에도 그대로 도입되고 있다. 그래서 이 참을 수 없는 경박함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 강금실은 똑똑함, 당당함을 버리고 색깔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 ‘보라색 강금실’의 출현은 대한민국 유권자의 수준이 그렇기 때문이지, 정치인의 수준이 천박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인이 자신들의 수준보다 못해 보여야 열광하며 표를 찍는 국민인데, 어느 정치인이 고지식하게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정책을 개발할 것인가. 이게 정치인의 책임인가. 국민의 비뚤어진 심리가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탁월한 대통령, 똑똑한 국회의원, 제대로 된 지방 정치인이 나올 리 없다.

열린우리당 지방선거 후보 대부분은 지금 모든 홍보물에서 당명은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 감추면서 강금실류의 이미지 전술을 펼치고 있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의 기호는 지난번 총선 때와는 달리 2번이 아니라 ‘1번’이다. 열린우리당 후보가 기호 1번인지 아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노무현 정권에 대해 그렇게 욕을 해대며 분노했던 국민이라면 보라색을 들고 나오든, 노란색을 들고 나오든 여야간 경쟁 구도 자체가 성립될 수 없어야 할 것이다.

간첩을 민주투사로 둔갑시키고, 휴전선 3중 철책이 훤히 뚫리고, 경제 성장률이 5%도 안돼 빈곤층이 확대되고, 그런데도 이 모든 국가적 누란이 박정희 정권 때문이고 잘먹고 잘사는 계층이 더 잘먹고 잘살 수밖에 없는 양극화 때문이고…. 정권 최고 실세가 청와대 코 밑에다가 횟집을 열어 성업 중이고 청와대 비서가 자신의 부인을 목졸라 살해하는 그 숱한 전대미문의 기막힌 일들. “반미면 어떠냐. 일본이 왜 우리 우방인가”라고 허장성세를 부리다가 독도까지 들어오는, 건국 이후 최악의 외교적 수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국기(國基)가 뿌리째 흔들리는 국정 난맥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이미지 정치 한방에 넋을 잃어 5·31 선거를 노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삼지 않고 후보 이미지나 고른다면 앞으로 10년, 20년 더 고생하는 것은 숙명이 된다. 자존심 상할 이야기지만 정치 권력은 국민 수준과 똑같다. 노 정권 3년을 거치면서 두고두고 깨달은 사실은 정치적 선택의 중요성이다. 더 이상 욕해본들 부질없다. 이번 지방선거는 ‘국민 수준’이 국민의 손에 의해 냉철히 평가받는 계기여야 한다.

윤창중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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