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오세훈 전 의원을 적극 ‘영입’해 당내 서울시장 후보 경선 판도를 바꿔 놓더니 이제는 당 개혁을 외치며 정풍운동에 대한 불을 지피고 있다. 이들은 당의 위기를 불러온 성추행 사건과 공천비리 파문 모두 당 중진 의원들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풍운동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소장파들이 주장하는 정풍운동이 당내에서는 ‘구(舊)인물 축출’로 받아들여지면서 반발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정풍운동을 둘러싼 당내 논란은 소장파를 비토하는 세력이 적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 꼴이 됐다. 따라서 오 전 의원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 참여를 이끌어내 ‘오풍(吳風) 효과’로 당내 입지를 세우고 공천비리 파문으로 ‘굳히기’에 들어가려 했던 소장파들의 행보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소장파 “집권 위해서는 정풍운동 불가피”

    소장파의 좌장격인 원희룡 최고위원은 14일 MBC라디오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는 살을 도려내는 단절 의지를 가진 충정이 모여 새로운 정풍운동이 불가피하다”며 “구체적인 대상을 염두에 두었다가 보다 구태로부터 오는 풍토를 단절해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보다 획기적인 자기 변신, 희생의 모습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사태를 놓고도 자기 정풍의 모습이 없으면 그 정당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 아니냐”며 “그동안 구태와의 단절과 거꾸로 가던 그런 여러 가지 모습들에 대해선 당이 인적·제도적·의식적인 단절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 디지털위원장이면서 소장파 의원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 소속인 초선의 김명주 의원은 공천비리에 연루된 5선의 김덕룡 의원에게 정계은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존경하는 김 전 원내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머뭇거리지 않고 국회의원 사직은 물론 표표히 정계를 은퇴하는 것”이라며 “그런 결단이야말로 위기에 빠진 당을 살리고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키며 그나마 대정치가로서의 마지막 아름다운 뒷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DR이 누구인가. 5선 의원으로서 17대 국회 한나라당 초대 원내대표를 지낸 분이고 이번 전당대회 유력한 당대표 후보였고 게다가 한나라당 개혁의 상징이기도 한 분 아니었느냐”며 “DR이 가지는 당내 위상과 상징으로 말미암아 한나라당 전체가 돌팔매질 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게 됐다”고 개탄했다. 그는 “최연희 사태 이후 다시 한번 당 중진의 얼토당토 않는 행태로 말미암아 당이 또 다시 위기에 빠졌다”고도 했다.

    수요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박형준 의원도 이날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당 지도부가 공천 비리에 대한 엄단 의지로 검찰에 고발한 것을 평가한다”며 “이런 의지를 가지고 정풍 운동을 과감하게 펼치고 많은 희생이 따르더라도 처리하고 넘어가는 환골탈태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이 사태를 포함해 제기되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단호히 대처할 것을 기대하고 함께 동참하겠다”며 “당 지도부가 나서서 정풍 운동을 해야 한다. 수요모임은 뒤에서 적극 밀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천비리를 척결하지 않으면 다음 집권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소장파들은 당초 제기한 ‘당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서는 일부 의원들의 사견임을 강조하며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공천비리 파문에 대한 당 지도부 책임론이 당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 의혹의 시선이 더 많이 받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원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표를 비롯해 지도부에서 당내 소속 중신 의원들을 검찰에 고발한 것은 아주 어려운 결정”이라며 “당 지도부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전체가 무한 책임을 져야 된다”고 말했다. 박형준 의원도 “당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일부 의원들의 사견이다. 지금은 당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할 때가 아니다”고 한발 뺐다.

    “소장파 정풍운동은 정치적 의도있는 해당(害黨)행위”

    소장파들이 일단 ‘지도부 책임론’은 접었지만 이들에 대한 당내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공천개혁과 그 과정에서 생긴 잡음에 대해 단호하게 처리하는 것 그 자체가 정풍운동”이라고 소장파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며 중도성향 의원모임인 ‘푸른모임’도 이들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푸른모임 대표 임태희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비리와 관련된 인사에 대한 정리 차원의 정풍운동은 당연하고 적극 추진해야 한다”면서도 “무작정 이 사안을 가지고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당에 생채기만 내는 잘못된 문제제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마치 이번 문제를 당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연결시키는 데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푸른모임 소속 김정훈 의원은 “당이 어려운 시기에 왜 정풍운동을 하자고 하느냐”며 “공천비리가 일어나도록 당 지도부가 시킨 것도 아니고 개인 차원에서 일어난 것인데 인책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이 문제를 특정 정치세력이 정치적 의도로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는 해당행위다”며 “그들은 당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 자기 지역구나 신경 써라”고 쏘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