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당내 공천 비리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했다. 소속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라는 ‘극약처방’으로도 파문이 가라앉을 조짐이 보이지않자 원내 사령탑인 이재오 원내대표가 14일 결국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최연희 성추행’ 사건으로 박근혜 대표가 대국민 사과를 한지 한 달 보름만이고 올해 들어 두 번째다.

    당초 한나라당은 5·31지방선거 구청장 공천과 관련, 억대 금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당 중진 두 의원을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이번 사태가 진정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허태열 사무총장은 당의 검찰수사 의뢰로 두 의원이 탈당과 정계은퇴를 선언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대국민사과를 해야 할 사안이냐. 공천 비리가 너무 많이 터진다면 사과할 수도 있지만 두 건 가지고… 뼈를 깎는 결단을 내렸는데 국민에 보답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이번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의혹이 커지면서 ‘동정론’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다.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됐던 5·31지방선거에도 빨간불이 들어오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것이다.  

    한나라당의 위기의식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평소 기자들의 질문까지 받으며 30~40분 가량 진행되던 회의가 5분 정도의 이 원내대표의 대국민사과만 공개된 뒤 바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공천 잡음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대국민 사과

    이 원내대표는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국민 여러분께 한나라당의 5·31지방선거 관련 공천 잡음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말씀 드린다”고 머리부터 숙였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의원들의 표정에도 비통함과 비장함이 함께 묻어났다.

    이 원내대표는 공천비리 차단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며 자세를 낮췄다. 그는 “앞으로 설사 더 많은 한나라당 의원이 공천비리에 관련돼 한나라당 의석이 반으로 줄어드는 한이 있어도 단호히 대처하겠다”며 “부정부패와 관련, 한나라당의 반이 무너지더라도 국민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는 한나라당을 만들겠다”고 결연한 각오를 나타냈다.

    이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어려워졌지만 이제 시작”이라며 “자기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 잘못을 지적할 수 있겠느냐. 내부 공천비리를 끊지 않고 노무현 정부의 부정·부패를 비판할 수 있겠느냐. 우리 내부 부정과 비리를 감추고 어떻게 국민 앞에 정권을 맡겨 달라고 호소할 수 있겠느냐”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한나라당의 자정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자정을 위해 다른 당의 비난도 감수하고 억울해하지 않겠다”며 “한나라당의 혁명이 성공해 다른 당이 본받을 때까지 온갖 비난과 욕설을 감수하고 한국 정치의 지평을 열기 위해 조용히 뚜벅뚜벅 이 길을 가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공천잡음 단호하게 처리하는 게 정풍운동"

    이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소속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가 부정부패와 절연하겠다는 한나라당의 결연한 의지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한나라당 두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라는 정당사 초유의 일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부패 고리를 차단하려는 혁명적 결단이었다”며 “눈물을 머금고 내부 아픔을 감수하고 두 중진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고 비장감마저 나타냈다. 그는 “이런 노력이 국민들로부터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얄팍한 정치적 술수가 아니고 진정으로 거듭나려는 것”이라고 진정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한나라당에 덮여 씌어진 (‘차떼기당’) 오명과 누명을 알고 있다. 이것을 끊어 내려면 당이 벼랑 끝에서 다시 일어서는 노력 없이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어떤 의원이나 당직자가 비리와 부패에 관련되면 국민의 눈으로 심판하겠다”고 공천비리에 대한 엄단을 약속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의 노력과 몸부림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치권을 만드는 작은 거름이 되길 바란다”며 “이번 조치에 대한 의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동료 의원들도 설득하지 못해 지방선거에서 지지를 많이 잃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이번 지방선거가 목표가 아니고 이 나라 정치를 바로 잡는 길을 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정풍운동’ 이야기가 거론되는 것을 겨냥한 듯 “눈 앞의 선거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단합해 당을 제대로 고치자”며 “공천개혁 과정에서 생긴 잡음에 대해 단호하게 처리하는 것 자체가 정풍 운동”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