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법학과, 동 대학원 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박사, 외무고등고시 합격, 영국 뉴캐슬대 정치학과 조교수, 두차례의 청와대 비서관, 그리고 재선 국회의원.

    웬만한 이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다.

    자신의 엘리트, 귀족적 이미지를 벗고 서민앞에 다가가기 위해 박 의원은 3개월만에 무려 18kg 감량에 성공하는 의지도 보였다. 그는 다이어트 경험을 토대로 '박진감있는 돌고래 다이어트(넥서스)'를 펴내 한 대형서점 집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서울시장 경선을 준비해왔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한 다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말했다.

    '신서울구상 ABC-선진적이고(Advanced) 균형잡힌(Balanced), 그리고 쾌적한(Comfortable) 서울'로 정리된 치밀한 공약은 박 의원의 말대로 "서울시민이 먹고 사는 문제, 서울을 발전시키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14회에 걸친 공약발표를 가질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과 비전을 제시해왔다.

    이러한 그가 12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보였다. 앞서 함께 시장경선 후보로 경쟁했던 박계동 의원이 "오세훈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환하게 웃으면서 사퇴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광경이었다.

    그의 눈물은 '정책과 인물'을 이겨버린 '이미지'에 대한 분루였다. 그가 반년동안 서울시 곳곳을 뛰어다니며 시민들의 고민을 들어온 발품도, 밤잠을 설쳐가며 공들여 만들어온 서울비전도, 모든 휴일을 반납하며 달려온 보좌진의 노력도 갑자기 나타난 '이미지'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날 서울시장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박 의원은 "룰을 지키고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는 새로운 정치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스스로 물러나야하는 지경에 몰린 '순진한' 정치인이 '일꾼'을 몰라주는 정치문화에 대한 섭섭함과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다.

    보라색이니 녹색이니 서울시장 선거가 알록달록해지고 있다. 한 정계 인사는 이러한 양상을 보며 '마치 연예가중계를 보는 것 같다'고 한다. 서울시장은 4년동안 인기를 먹고 사는 자리가 아니라, 시민을 먹여살려야 하는 일꾼이다. 박 의원의 사퇴는 우리의 잘못된 선거문화를 적시하고 이를 변화시켜나가는 기폭제 역할을 할 듯하다. 실체가 불분명하더라도 막연한 기대감으로 '인기'를 제공했던 유권자들로 하여금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을 다시금 살펴보게 하고 있다.

    17대 총선에서 박 의원은 탄핵역풍으로 수도권 한나라당 소속 후보들이 고전을 면치못하는 동안 보란듯이 '정치 1번지' 종로를 수성했다. '질주하던 기차에서 갑자기 내려 백지상태 같다'며 지금의 심경을 밝힌 박 의원에게는 지난 총선에서 종로구민들이 '바람'보다 '인물'을 선택했던 기억이 새삼 고맙게 느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