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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주필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저 쪽은 결국 정동영 의장이 대선 최종 주자로 올라올 겁니다” 한나라당 쪽에서 큰 꿈을 꾸고 있는 한 인사는 그렇게 전망했다. 왜 그렇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열린우리당은 코드 정당이어서 외부에서 색깔이 불분명한 제 3의 인물을 수혈하는 등의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에서 줄곧 이인제씨가 대세였으나 이회창씨에게 밀리니까 다크호스라 할 노무현씨를 대타로 내세워 성공한 사례를 들며 고건 전 총리 같은 이를 영입할 가능성도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코드의 강도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게 그가 ‘정동영 후보론’을 굽히지 않는 이유였다.
그 인사가 가리킨 ‘저 쪽’의 대선 예선전이 이미 샅바 싸움 단계를 넘어선 것 같다. 정 의장과 고 전 총리는 보름 전 만나 5월 지방선거에서 한 배를 탈 수 없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샅바 싸움을 대신했다. 지난주엔 텃밭인 전북에서 1합을 겨뤘다. 각기 수백 명의 지지자들을 이끌고 새만금 공사장을 방문, 세를 과시했으며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강현욱 전북 지사를 놓고 줄다리기까지 했다.
두 사람의 격돌은 올 것이 온 셈이나 예상보다 앞당겨진 느낌이다. 이는 행정가로서 돌다리를 두들겨보고도 몇 번씩 숙고하던 고 전 총리가 ‘그답지 않게’ 큰 꿈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과감히 정치인으로 변신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사소한 예지만 회식 자리 등에서 ‘주도권’을 잡는 그의 모습은 신중함으로 일관하던, 그러니까 기자가 알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오랜 2인자로서의 경륜과 대중적 지지를 밑천으로 1인자 지위에 도전키로 한 고 전 총리는 정 의장과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이번 지방선거를 그 첫 승부처로 삼은 것 같다. 그로서는 지지층이나 당내 역학 구조 등으로 볼 때 한나라당에 둥지를 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그 반대편에 진을 쳐야하는데 만일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 의장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열린우리당을 이끌고 선전한다면 정 의장의 입지는 그만큼 확고해지는 대신 고 전 총리의 설 자리는 좁아진다. 고 전 총리는 열린우리당이 자신을 구원 투수로 모셔갈 상황이 오는 게 바람직하며 그래서 정 의장을 도울 수 없는 것이다.
고 전 총리가 도와주면 특히 호남에서 큰 힘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정 의장도 그의 뜻이 정 그렇다면 언젠가는 해야 될 정면 승부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고 전 총리에게 경륜과 대중적 지지가 있다면 자신에겐 패기와 조직이 있다고 믿을 것이다. 선거가 2년 가까이 남은 지금의 대중적 지지는 뜬구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또 자신은 지난번 대선과 총선에서 불리한 판도를 반전시킨 노하우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번 이해찬 총리 퇴진과 후임 인선 과정에서 영향력을 당 내외에 과시했다는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이처럼 입증된 리더십을 무기로 이번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선전을 이끌어내고 그리하여 고 전 총리의 입지도 바짝 좁힌다는 계산을 함직하다.
모두 호남 출신인 위의 두 사람에겐 호남 민심을 장악하는 게 정권 장악의 충분 조건은 못 되지만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정 의장으로서는 전북을 지방선거 선전의 기폭제로 삼아야 하며 고 전 총리는 그걸 막아야 한다. 두 사람이 전북에서 첫 합을 겨룬 까닭이다.
이처럼 두 사람에게는 전북의 선거 결과가 대선가도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열이 불가피한 데다 텃밭에서의 줄다리기여서 자칫 경쟁적으로 지역 감정에 호소할 우려가 없지 않다. 두 사람의 싸움이 그런 양상으로 발전할 경우 한나라당의 후보군 분포 등에 비추어 여야의 대선 본선도 또다시 지역 대결로 이어지지 않을까 적잖이 걱정이다. 전주북중과 서울대학의 선후배 간이기도 한 두 사람의 지역 감정 배제 등 페어플레이가 각별히 요구되는 까닭 중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