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명지대 교수인 남진우 시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최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팀이 선전한 덕분에 야구 바람이 한 차례 거세게 불고 갔다. 그리고 이 바람은, 많은 사람이 예측하듯이, 조만간 다가올 독일 월드컵에서의 축구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팀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자 전국이 거대한 열정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 들었고 경기의 중계와 관전은 일종의 축제로 화했다. 몇 년 전 월드컵 때 그 많은 축구 팬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다 이렇게 나타났나 놀랐던 이들은 이번엔 이토록 많은 야구광이 그동안 어떻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지 않고 은인자중 살아왔는지 의아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의 화제가 온통 야구로 쏠리다 보니 괜히 이야기에 끼어들었다가 최근 야구판의 정보에 대한 무식을 노출하고 머쓱해하는, 급조된 사이비 야구팬의 등장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점차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지난 월드컵 때 확연하게 나타난, 스포츠 이벤트를 통한 국민적 열광이 이제 일회성의 체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반복되고 다시 창출되는 국가적 의례의 일종이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토록 국가 대항전 성격의 스포츠 이벤트에 몰입하는 것일까.

    한창 야구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때 TV 뉴스 등을 통해 익숙하게 된 말이 있다. “그대들이 있어 우리는 행복했다.” 물론 이 말엔 선수들이 보여 준 뛰어난 기량에 대한 갈채와 더불어 세계무대에서 외국 팀을 상대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잘 싸워 준 ‘그대들’에게 보내는 응원이 담겨 있다. 동시에 이 말은 그동안 ‘우리’로 대변되는 다수의 한국인이 얼마나 ‘행복’에 굶주려 있었던가 하는 점도 일깨워 주고 있다.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의 진척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은 별로 ‘행복’하지 않은 현실이 이 말 속에 숨어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사람들에겐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모자랐고 그것을 채워 줄 대상을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었으며 어쩌다 대규모 경기를 통해 그 분출구를 찾게 된 것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스포츠 경기의 중계와 관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스펙터클을 형성하며 집단적 환상을 체험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집단적 환상으론 우선 승리의 환상을 들 수 있다.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것, 우리도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 근대의 지각생으로 출발했지만 야구 경기에서 아시아의 강자인 일본과 그 종주국인 미국을 침몰시켰듯이 우리도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 이런 감정이 바로 승리의 환상을 관류하고 또 부채질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축구나 야구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한민족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일종의 인정 투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스포츠 이벤트는 참여의 환상을 낳는다. 이들 경기는 단지 스포츠 선수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그것을 보고 즐기는 모두가 축제의 주인공이 되며 전 국민이 하나로 뭉쳐 중요한 과업을 완수한다는 의욕과 열정을 산출한다. 집단을 이룬 개개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거대함에 스스로 놀라고 대견해하며 신명이 나서 그것의 확산에 이바지한다. 그 결과 이러한 스포츠 이벤트는 통합의 환상을 조장한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우리는 하나고 한 핏줄이며 한 공동체의 소속원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여러 학자가 지적했듯이 스펙터클은 우리 시대 최고의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흥거리를 원하고 그럴듯한 드라마를 희구한다. 역전을 거듭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스포츠 이벤트보다 그것에 더 잘 부응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거의 집단 최면을 방불케 하는 특정 스포츠에 대한 열기 이면엔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과 외면하고 싶은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매스미디어에 의해 유도되고 대기업의 마케팅이 후원하는 스포츠 이벤트가 과연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오히려 기존 상태의 재생산에 이바지할 뿐이지 않을까. 축구 경기를 응원하는 열기 어린 함성이 가까워질수록 그 화려한 스펙터클이 제공하는 환상에서 눈을 돌리고 잠시 고요한 침잠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존재도 이 사회 한구석에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